새벽 일찍부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고장난 TV를 수리점에 맡겨 달라는 어머니의 부탁이었다. 홀로 된 어머니는 정규방송이 끝난 낮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유성방송을 신청해 보고 계시는데 TV가 그만 고장난 것이다.
“어머니, 서비스센터에 전화하면 방문수리해줄 겁니다”라고 말했지만 마음에 걸려 출근길에 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텔레비전이 보자기에 싸여 있었고 그 옆에 계수씨가 시린 손을 비비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계수씨는 “서비스센터 직원을 부르면 출장비만 7천원이나 된다”며 큰 TV를 자전거에 싣고 수리점에 직접 갔는데 수리비가 5만원이나 돼 그냥 가져왔다는 것이다. TV를 들고 나와 고쳐다 드렸다.
계수씨는 같은 직장에 다니던 동생과 결혼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2년전 동생이 다니는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생활이 어려워졌다. 계수씨는 살림비도 아낄 겸 집장만을 할 때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고 자청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 답지않게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경조사 등 집안 대소사도 요령있게 잘 챙긴다. IMF체제 이후 동생의 월급이 줄어드는 등 집안형편이 더 어려워졌는데도 늘 웃음을 잃지않는 계수씨가 고마울 뿐이다. 얼마전엔 교통비를 아끼려고 자전거를 구입했다고 한다. 세찬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계수씨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계수씨, 힘내세요. 행복한 날이 꼭 올 거예요.”
허 훈(회사원·경남 사천시 송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