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에서 발생한 북한 외교관 부부 망명사건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한반도 4자회담을 가로막는 복병으로 떠올랐다.
북한은 20일 분과위 첫날 오전회의에서 이 사건이 한국과 미국에 의한 ‘납치사건’이라고 주장해 회담 분위기를 갑자기 냉각시켰다. 이날 긴장완화분과위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이근(李根)북한 차석대표는 기자들에게 “최근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키고신뢰를해치는사건이 미국과 남조선에 의해 벌어진 데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적 특권을 가진 외교관을 백주에, 그것도 4자회담 직전에 유인 납치한 사실은 미국과 남조선이 명백히 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바라지않는다는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조선 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이 김경필서기관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측에 “김서기관부부를 지체없이 무조건 원상복귀시킬 것”을 촉구했다. 베를린주재 북한 이익대표부도 “안기부가 김서기관을 납치했다”며 자세한 상황까지 설명하면서 납치라고 주장했다.
북한대표단은 18일과 19일 회담에서는 외교관 망명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본국의 훈령에 따라 20일부터 회담장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 전까지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을 정도.
북한은 분과위에서 한국대표단에게 “본국에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본 뒤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후속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할 방침임을 비쳤다.
북한은 13일 발생한 망명사건을 왜 뒤늦게 문제삼고 있을까.
먼저 국제적 관심이 집중돼 있는 4자회담이 북한의 납치주장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좋은 무대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또 미국까지 책임이 있다고 밀어붙임으로써 23일 재개되는 북―미(北―美)협상에서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북한이 망명사건을 구실로 4자회담을 결렬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한은 긴장완화분과위 말미에 망명문제를 거론한 뒤에도 분과위를 계속 진행시켰고 오후에 열린 평화체제구축분과위에서는 이 문제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제네바〓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