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사랑했다가 상처받았지만 아버지를 용서하면서 살았어요.”
21일 83세를 일기로 작고한 김부미(金富美·83)씨. 백야 김좌진(白冶 金佐鎭)장군의 며느리이자 김두한(金斗漢)전의원의 미망인이다. 하지만 그는 죽어서도 남편 곁에 묻히지 못했다. 23일 화장된 그의 넋만 남편 곁으로 날아갔을 뿐이다.
김씨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일본 도쿄(東京)의 무사시노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신여성. 그의 지성과 세련된 외모는 ‘장군의 아들’로 종로통 ‘주먹세계’를 전전하던 김두한을 한 눈에 사로잡았다.
김씨는 ‘야생마’나 다름없던 남편에게 글을 깨우쳐주고 교양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초등학교 2년중퇴 학력이던 김두한은 아내 덕에 비로소 한글과 한문을 깨쳤다. 그들 부부는 20세기판 ‘온달과 평강공주’였다.
김두한은 그후 선거유세장에서 “‘베개 동무(베개를 함께 쓰는 아내를 지칭)’가 언문을 깨쳐줬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김씨도 여느 김두한의 여성처럼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꾸릴 수는 없었다. 남편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며 바람처럼 불쑥 나타났다 구름처럼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54년 3대 민의원의 아내가 된 김씨는 서울 낙원동 48칸짜리 대저택에서 한동안 여유있는 생활을 했으나 주먹쓰는 부하들이 수시로 집안을 드나들며 말썽을 피워 한시도 마음편할 날이 없었다.
72년 사망 직전 김두한은 자신 앞으로 되어 있는 국가유공자 연금 수령인을 제삼자 앞으로 돌려놨다. 아내와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장녀 김을동(金乙東·탤런트 겸 자민련 종로지구당 위원장)씨의 회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5일장을 지내는데 그 흔한 눈물 한방울 안나옵디다. 급속히 가세가 기울면서 고생만 하신 어머니야 어떠셨겠어요.”
가족들은 경기 벽제 묘지로 향하는 길에 노제를 지내는 한무리의 아이들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아버지가 연금을 포기하면서까지 남몰래 돕고 있던 경기 의정부의 한 고아원 원생들이었다. 그제서야 가족들은 아버지를 그리며 목놓아 울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