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요건을 갖추지 않은 불심검문은 불법행위로서 국가가 그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항소2부(재판장 정은환·鄭銀煥부장판사)는 국가가 장홍석씨(張弘錫·29·경기 고양시)를 상대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배상할 수 없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26일 “국가는 3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경들이 소속과 성명, 검문의 목적과 이유를 밝히지 않고 가방을 수색한 것은 불심검문의 개시요건을 갖추지 않은 불법행위”라며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옷이나 휴대품 외부를 손으로 만져서 흉기소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장씨가 명백하게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경찰이 모욕적인 언사로 가방을 열 것을 요구해 장씨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입힌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불심검문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
경찰관이 검문대상자를 정지시켜 질문할 경우 경찰관은 자기 신분과 질문 목적, 이유를 밝힌 뒤 소지품 내용을 물어볼 수 있지만 답변을 강요할 수는 없으며 수갑을 채우거나 다른 방법으로 검문장소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답변강요에 준하는 행위여서 허용될 수 없다고 재판부는 못박았다.
재판부는 경찰관은 대상자가 흉기를 소지했다는 높은 개연성이 있을 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지품의 개봉을 요구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대상자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일반 소지품을 조사하는 것은 불심검문의 한계를 넘는 것이어서 사전 또는 사후에 압수수색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씨는 97년6월1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소속 성명을 밝히지 않은 전경들이 가방을 열 것을 요구하자 “그냥 가방을 만져보라”고 거절했으나 강압에 못이겨 가방을 내주고 약 30분간 “직장생활 제대로 하겠어”라는 등의 놀림까지 받자 소송을 제기했다.
장씨는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장씨의 가방에는 취직시험문제지 영자신문 등이 들어 있었다.
국가는 장씨가 97년11월 1심에서 승소하자 이에 불복, 항소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