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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임연철/마르케스와 콜롬비아 지진

입력 | 1999-01-27 19:07:00


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남미 문인 중에서도 거인이다. 67년 발표된 그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은 세계 각국어로 번역돼 2천만권 이상 팔린 금세기의 고전이기도 하다. 카리브해의 열대 마을에 정착한 부엔디아일가의 흥망성쇠를 그린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노라면 마치 자연의 재해와 내전으로 얼룩진 콜롬비아의 어두운 현대사를 읽는 것 같아 마음까지 무거워진다.

▽마르케스가 ‘백년 동안의 고독’의 속편을 쓴다면 빼놓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대형 지진이 그의 조국 콜롬비아 서부를 강타해 사망자가 2천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보도다. 85년 루이스산의 화산 폭발로 만년설이 녹으며 생긴 진흙이 2만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기억이 생생하다. 겹치는 콜롬비아의 재난에 연민의 정마저 생긴다.

▽우연히도 지진이 일어난 25일은 마르케스가 본래의 직업이었던 기자로서 다시 활동하겠다고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밝힌 날이기도 하다. 최근 주간지 ‘캄비오(변화)’를 인수해 본격적인 언론 활동에 들어간 그는 ‘내 소설은 모두 기자로 활동하던 당시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했다. ‘현실’은 그의 문학의 모티브였던 셈이다.

▽71세의 노구를 이끌고 다시 지진으로 비탄에 빠진 조국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 기자로 활동하게 될 마르케스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콜롬비아 국민은 국민적 추앙을 받는 노기자가 전하는 보도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위안을 받을 게 틀림없다. 콜롬비아의 자연재해에 견줄 것은 아니지만 경제난 속의 우리 사회에도 마르케스같은 원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임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