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 겨울이 아니다. 겨울가뭄으로 애타게 눈을 기다리는 요즘. 그래서 소설 ‘설국’의 고향 일본 니가타에 내린 풍성한 눈은 더 더욱 부럽다. 눈과 스키, 그리고 온천을 함께 즐기는 일본의 대표적인 겨울휴양지 니가타를 다녀왔다.
길은 점점 좁아지다가 결국은 산골짜기 사이로 숨어들며 흰눈에 덮여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박한 시골의 정취를 시샘이라도 하듯 번듯하게 서있던 2층 집들도 하얀 솜이불을 뒤집어 쓴듯 지붕에 눈을 얹고 겨울 잠에 들었다. 이런 포근한 정경이 이방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곳. 소설 ‘설국(雪國)’은 이런 곳에서 태어났다.여기는일본혼슈섬 중북부의 니가타현. 스키와 온천의 고장이다. 스키장만 80여개. 온천은 1백20여개나 된다. 해마다 8천1백만여명이 찾아 든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노벨문학상을 받아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그 사람. 수상작 ‘설국’이 태어난 에치코 유자와는 바로 니가타의 남부에 있다.
이른 아침의 투명한 햇살 아래 순백의 눈이 빚어내는 유자와 마을의 겨울풍경. 글로 담아만 내도 노벨상 후보작은 될만했다. 그 눈더미 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인도와 드문드문 한 집 외에는 모든 게 눈 속에 잠들어 있다.
이곳의 눈은 태평양에서 수분을 듬뿍 머금고 날아온 바닷바람의 현신이다. 겨우내 보통 3∼4m씩 쌓이지만 많을 때는 6m를 넘기기도 한다.
그 풍부한 눈과 최고의 설질로 명망 높은 스키장, 여기에 땅만 파면 솟는 온천. 니가타의 환상적인 하모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설국’의 감동과 정취까지 서려 있으니 금상에 첨화로도 표현은 부족한듯 싶다.
열차를 타고 유자와로 향하던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가 차창 밖의 설경에 겹쳐 차창에 비친 여인의 얼굴에 가슴을 떨었듯 서울서 날아간 이 낯선 여객(旅客)도 유자와와의 첫 만남에서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유자와의 온천 역사는 1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눈 녹이는 온천수가 김을 내며 흐르는 도로를 따라 가다 유자와역에 닿았다. 건너편 온천 중심가의 료칸(여관) 모습은 소설의 배경이 된 유자와마을의 옛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고만고만한 상점에서 파는 찹쌀떡과 ‘고마코 모치’…. 소설속의 기생 고마코는 찹쌀떡과 팥과자 이름으로 모습을 바꿔 아직도 유자와에 살아 있다.
온천가의 끝자락 높은 언덕배기에는 8백년전부터 이 곳을 지키는 다카한 료칸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60년전 ‘설국’을 집필했던 그 여관이다. 가와바타는 1934년부터 3년간 이곳에 묵으며 역필(力筆)을 쏟아냈다. 그때 그가 쓰던 책상이며 화로, 앉은뱅이 의자, 팔걸이가 지금도 예전 그대로 전시돼 있다.
깨끗한 눈과 뜨거운 온천속에서 ‘설국’의 정취를 유유자적하며 음미할 수 있는 곳. 유자와의 겨울은 그래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숙박★
니가타의 스키장 주변에는 특급호텔과 일본의 전통여관등 중급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대부분 온천을 갖춰 ‘애프터스키’에는 그만이다.
대부분 호텔은 스키리조트에 인접하고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반면 숙박료는 1인당 20만원 안팎으로 비싼 편이다.
때문에저렴한요금으로온천과 일본의정취를함께즐길 수 있는 팡시옹의 인기가 높다.
팡시옹은 일종의 고급민박으로 아침 저녁식사까지 제공한다. 팡시옹은 스키장지역에 단지처럼 1백여채가 밀집해 있는데 집집마다 주인의 취향을 살린 분위기와 음식으로 여객(旅客)들을 맞는다. 대개 2,3층 건물로 방은 10여개. 이곳에 묵게 되면 일본인 특유의 ‘감동적인’ 서비스도 받을수 있다.
한국인 여행자가 투숙할 경우 주인이 역에까지 나와 마중하며 원하는 스키장에까지 직접 데려다 준다. 또 대부분은 호텔 여관처럼 노천온천탕을 갖추고 있어 이국적인 온천여행을 기대했던 이들을 흡족하게 한다. 숙박료는 하루 1인당 6만원 안팎.
일본의 전통여관인 ‘료칸’도 한번쯤 묵어 볼만하다. 일본 고풍을 그대로 재현한 미이카 마치코 마을의 류곤(龍言)료칸은 고급 휴양시설로 일본인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1천6백평 규모에 36개의 방, 하루 숙박료가 1인당 30만원 안팎으로 비싸다.
★아오모리현 축제 패키지★
일본 혼슈의 최북단 아오모리현이 펼치는 ‘도와다호의 겨울이야기’축제(2월12∼21일) 여행상품이 판매중이다. 2박3일은 59만9천원, 3박4일은 74만9천원. 일본전문여행사 His투어가 안내한다. 02―755―4100
★유자와 「설국공원」★
설원(雪原)을 무대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설국’으로 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
니가타의 유자와는 그가 1934년부터 1937년까지 머물며 ‘설국’을 집필한 곳이다.
유자와역에서 걸어서 5분정도 거리에는 설국공원이 있다. 여기에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이었다’는 소설의 첫 구절이 가와바타의 친필로 바위에 새겨져 있다.
‘설국’은 비현실 세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순일(純一)한 미를 보여준 일본 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 문학의 지평을 넓힌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어려서 부모를 여읜 뒤 10대부터 소설을 쓴 가와바타는 노벨상 수상 4년만에 밀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니가타〓박정훈기자〉hun3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