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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어장 잃은 어민들

입력 | 1999-01-29 18:55:00


한일 어업협정 실무협상이 지난주 결렬된 후 남해와 동해의 텃밭같은 어장에서 고기를 잡아온 어민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선대부터 조업해온 황금어장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포함돼 버렸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 정부는 상호 배타적 경제수역을 인정하고 거기서 두나라 어민의 어로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작 경제수역의 입어(入漁)조건에 관한 실무협상을 타결짓지 못해 어로허용은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일주일째 어장에 나가지 못한 어민들의 생계를 생각해서도 정부는 하루 빨리 실무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일본 경제수역으로 편입된 어장에서 지금까지 조업해온 우리 어선은 줄잡아 1천4백여척에 이른다. 양국 정부가 실무협상을 마무리짓기까지 이 배들의 입어가 금지된 것은 온당치 못하다. 정부의 협상력 부재로 우리 어업의 상당부분이 일본과의 협상에 볼모로 잡혀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새 한일 어업협정이 발효되기 전 그 곳은 우리 어민의 오래된 어장이었다. 경제수역 선포로 입어를 막을 수 없는 연고권을 갖고 있다고 할 만하다. 내주 초부터 재개될 실무협상은 이러한 어민들의 연고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진행돼야 할 것이다.

경제수역 입어조건은 어민들이 주거지 행정관청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일본측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를 까다롭게 규정할 모양이다. 실무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입어절차를 거치자면 최소한 40여일이 지나야 실제 조업이 가능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 경과규정을 두어 조업을 즉시 허용하면서 새 입어규정을 시행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간 협조로 그런 어민위주 행정이 이루어질 때 어업협정에 대한 어민 불만 해소도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어업협정 발효와 실무협상 전후의 정부 어민 대책을 보면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실무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조업에 나선 어민들에게 협상이 결렬될 경우의 대책을 제대로 알리고 효과적으로 어로지도를 했는지 자성해야 한다. 수많은 어선이 값비싼 어구(漁具)들을 거두지도 못한 채 도망치듯 어장을 빠져나와야 했으며 4척은 일본측에 나포되기까지 했다. 어업 실무협상이 휴전협상이며 일본이 전쟁상대국이냐고 묻는 어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한일관계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 경제수역의 입어금지로 국내 수산물 가격이 벌써 파동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본 경제수역에서 어로가 재개된다 해도 새로운 제한때문에 어획고는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어 수산물가격 폭등이 우려된다. 정부는 대규모 원양어업이나 연안 양식어업 지원으로 어업 구조조정을 서두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