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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규민]거짓말과 착각사이

입력 | 1999-01-31 19:39:00


사람은 얼마나 자주 거짓말을 할까. 이것만큼 개체에 따라 차이가 큰 것도 드물겠지만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은 인간이 무의식중에 거짓말을 하루평균 2백번한다는 실험결과를 내놓았다. 거짓말의 기준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보여준다. 가장 심한 집단은 정치인이라던가. 그런 눈의 서양인들에게 우리는 유난히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로 비칠 수도 있다. 17세기 한국을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책 하멜표류기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남을 속이기 좋아하고 남이 속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요즘 청문회를 보면 하멜에게 서운해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 청문회 답변 애매모호 ▼

필자는 뉴욕특파원 시절이던 97년 3월 21일 한보 삼미사태로 신용도가 떨어져 한국이 뉴욕 금융시장에서 외화차입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미연방은행이 한국계 은행의 도산에 대비한 조치를 취한 데 놀라서 보낸 환란경고 기사였다. 재정경제원은 즉각 “경제기저가 건강해 외환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이른바 펀더멘털론을 등장시켜 이 기사를 오보라고 몰아쳤다. 근거라며 전언론사에 배포한 수치는 뉴욕금융가에서 일대 조롱거리가 됐다. 국민을 속이기보다 대책마련에 서둘렀다면 환란은 예방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강경식(姜慶植)당시 부총리는 퇴임때까지 이 펀더멘털론을 반복했다.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진실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 거짓말의 심각성”이라는 말을 확인해 주는 대목이다.

97년 11월 19일 당시 임창열(林昌烈·현 경기지사)부총리가 취임기자회견에서 ‘IMF불용론’을 주장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정이 건전해 IMF지원이 필요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는 당일 뉴욕주재 한국 특파원들에게도 배포됐다. 이미 이틀전부터 IMF지원을 알고 은밀히 내부 준비중이던 뉴욕 금융계에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현지 재경원 관계자도 놀라 임부총리와 국제전화를 했더니 “(IMF로) 가긴 가는데 발표때까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임지사는 I MF행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누구말이 거짓인가. 임지사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나 재경원의 부하직원들 그리고 경제수석이나 전임자와 상반된 말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만일 IMF행을 통보했다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맞다면 임지사는 사오정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사오정이라면 경기도민의 소리는 도정에 반영되기 어렵다. 임지사의 말이 맞다면 우리나라는 당시 대통령까지 믿을 수 없는 거짓말공화국이다. 거짓과 착각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다.

정치판에서는 거짓과 궤변이 혼재해서 나타나는 일도 흔하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내각제에 합의하던 97년10월31일 당시 우리 경제는 2주일 뒤에 IMF로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환란의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도 “IMF를 예상못한 상황에서 합의했기 때문”에 내각제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바로 그 사람들이 청문회에서는 전정권의 증인들을 대상으로 “왜 97년초부터 시작된 환란의 징후를 미리 감지하지 못했느냐”며 공격한다. 상황적 논리로 거짓을 정당화하려 할 때 모순은 드러나고 궤변은 극치를 이룬다.

“편중인사나 지역차별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다”는 고위인사들의 말도 그렇다. 영남출신 외에 호남약진으로 자리를 잃은 제삼지역 사람들에게도 편중인사는 피부로 느껴진다. “특정지역출신 장관이 동향의 과장과 직거래하는 바람에 할 일을 잃었다”는 경제부처 한 ‘왕따’국장의 푸념 속에서도 지역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신뢰성은 느낌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 정치판은 궤변의 극치 ▼

사람은 살아가면서 가꿔지는 존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이다. 정직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진실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손실을 수반하고 용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항상 이겨야 하고 더 많이 얻어내는 데만 익숙한 정치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주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링컨대통령의 말처럼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다중을 순간적으로 속일 수도 있지만 다중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한 수용기준이 엄격해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유권자들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규민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