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일본언론에는 “아키히토(明仁)천황의 조기방한이 어렵다”는 일본정부 관계자들의 말이 자주 실린다.
대체로 “한국정부가 여러차례 천황방한을 희망해 왔지만 한국 국내정세나 북한의 동향이 불투명해 조기방한은 쉽지 않다” 또는 “천황 방한중 ‘불의의 사태’가 없다는 확신이 서야만 가능하다”는 식이다.
이같은 보도들을 보면 천황방한은 순전히 한국의 희망사항이고 성사여부도 한국에 달렸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한국이 현정부 출범후 한일 우호관계 구축을 위해 천황방한에 과거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천황방한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요즘 일본의 분위기는 뭔가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 든다.
천황방한문제가 한일간에 처음 거론된 것은 82년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정권이 한일 과거사문제를 청산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로 히로히토(裕仁) 당시 천황의 방한문제를 꺼내면서였다.
일본의 제안은 당시 한국사회의 반발에 부닥쳐 ‘없던 일’로 됐지만 그뒤에도 이 문제에 집착한 것은 오히려 일본이었다.
일본이 천황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한 여건조성을 한국에 주문하지만 일본정부가 일본내에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불상사 우려’도 그렇다. 지난해 영국 런던을 방문중이던 아키히토 천황이 2차대전에 참전한 영국 퇴역군인들로부터 달걀세례를 받았지만 일본정부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본정부가 한일간 ‘역사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한국정부도 일단 공을 일본측에 넘긴 이상 천황 조기방한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줄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권순활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