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史實)과 허구 사이.’
최초의 사극 ‘국토만리’가 KBS에서 64년 7월 첫 방영된 이후 줄곧 학계와 사극 작가 간의 논쟁거리로 남은 사극 제1의 딜레마. 아직까지 학계에서도 사극 작가의 ‘고증 수준’을 검증할 잣대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열악한 사극제작을 들여다보면 작가의 고증 작업을 어렵게하는 현실이 속속 드러난다.
▽열악한 사극 작가군〓현재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등록된 8백18명의 방송작가 중 사극작가는 10명내외. 그만큼 다른 드라마에 비해 취약한 ‘인력―풀(pool)’은 사극이 시작된지 35년간 ‘그 작가에 그 작가’현상의 원인이 됐다.
비슷한 소재들이 계속 되풀이됐으나 작가들의 활발한 의견교환은 커녕, 같은 소재에 대한 추가 고증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 지난해까지 제작된 2백82편의 사극 중 대부분이 장희빈 춘향전 대원군 등을 소재로 택했으며 수양대군은 ‘왕과 비’를 포함, 아홉번씩이나 다뤄진 소재였다.
▽열악한 제작여건〓사극 사상 최고액인 회당 1억5천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용의 눈물’에서도 대부분의 제작비는 ‘벌떼처럼’ 동원된 배우들의 인건비, 고려시대와 조선초기 복식 재현에 할애됐다. 기껏해야 자료수집을 위한 보조인력 동원이 고작인 작가에게 학계와의 연대작업은 요원했다는 것.
이에 대해 박광용 가톨릭대교수(국사학)는 “사극 작가들이 쉽게 참고할만한 역사논문을 내지 못하는 학계에도 약간의 책임이 있다”면서도 “인력과 시간의 한계가 엄밀성을 바탕으로 해야 할 사극에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며 치열한 고증작업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헌기자〉yengl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