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李宗基)변호사 수임비리사건과 뒤이은 심재륜(沈在淪)대구고검장 항명파동은 전별금 또는 떡값이 그 단초가 됐다. 심고검장은 물론 사표를 냈거나 징계위에 넘겨진 다른 검사들도 모두 이변호사로부터 전별금이나 떡값을 받아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사건의 본질을 검찰 인사의 구조적 문제점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 등 보다 본질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별금은 관행쯤으로 치부해버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의식과 문화가 배어있다. 떠나는 사람에게 정표로 뭔가를 주고 싶어하는 순수한 정(情)의 심리가 숨어있고 관(官)이기 때문에 뭔가를 줘야 하고 받아야 한다는 관 우월의식도 배어있다. 전별금에 대한 법의 입장은 분명하다. 법은 전별금을 받는 행위를 국가공무원법의 품위유지 조항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고 징계토록 하고 있다. 전별금의 실태와 관행을 파헤쳐 본다.》
“저 검사님 이거….”
지방 소도시의 지청장으로 근무했던 김모부장검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지역 유지들과 대충 이임 인사를 나누고 승용차에 오르는 순간 사무실 여직원이 차창 안으로 누런 대봉투를 들이밀었다. 대봉투안에는 수십개의 흰 봉투가 들어 있었다. 작별인사를 왔던 부하 직원, 변호사, 지인(知人)들이 사무실에 놓고 간 전별금 봉투들이었다.
전별금은 ‘떠나는 이에게 잔치를 베풀어준다’는 의미의 ‘전별’(餞別)에서 유래했다. 관행처럼 굳어져 온데다 떠나는 사람에게 주는 돈이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다고 해서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 온 것이 전별금이다.그러나실제로는어떤가.
■전별금의 규모는………………………
전별금은 개인의 영향력과 근무지에서 쌓은 친분 지연 학연 등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일반적으로 힘있는 기관의 공직자일수록 액수가 크다. 현직 경찰 고위간부의 증언이다.
“옛날 얘기지만 지방청장이 다른 근무지로 옮기면 기천만원의 전별금이 거두어질 때도 있었다. 부하직원들이 주는 것은 앞으로 계속 만나야 하니까 계속 잘 봐달라는 ‘보험금’이고 지방유지들이 주는 돈에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뜻과 ‘후임자에게 잘 이야기해달라’는 뜻이 섞여 있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시절 좋았을 때의 일이고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다.”
법조계도 전별금 관행이 뿌리 깊은 곳이다. 서울고검의 한 검사는 “몇년전 지청장에서 으로 옮길 때 3백만원가량 받았다”며 “전별금은 △이사비용 △새 근무지에서 2∼3개월 지낼 체재비 △새 직원들과의 회식비용 등의 용도로 쓰라고 주는 돈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법 박모판사는 “90년대 초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올 때 지역내 판사 전원, 그리고 검사 변호사의 절반정도가 1인당 10만원 정도씩 전별금을 줬는데 총액이 2백만∼3백만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개혁변호사모임 대표인 손광운(孫光雲)변호사는 “2∼3년전까지만 해도 변호사가 지검장 지원장에게는 50만∼1백만원, 평검사에겐 10만∼20만원씩 전별금조로 주는게 관례였다”며 “평소에 뇌물을 받지 않는 깨끗한 법조인도 별 부담 없이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다른 공직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관가에서는 국세청 환경부 노동부 순으로 전별금 액수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부 한 간부의 설명이다.
“요즘은 액수가 많이 줄었지만 연고가 있고 근무기간이 좀 긴 경우엔 여전히 지방노동청장급(2급)은 최고 1천만원, 지방소장급(4급)은 최고 3백만∼4백만원, 사무관급은 1백만∼2백만원 받을 수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그중 60%는 관련 업체 등 외부에서 주는 것이고 나머지는 부하 직원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추렴한 돈이다.”
시장 군수를 역임한 행정자치부의 한 고위간부는 “관선 시절이던 70, 80년대에는 시장 군수가 임지 서너곳을 거치면서 받은 전별금으로 집 한채는 살 수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며 “나도 80년대 중반에 중소도시 시장을 지낼 때는 조용히 떠나려 해도 5백만원 가량이 전별금으로 들어왔다”고 털어놓았다.
이슈 추적팀이 취재한 지방근무 경험이 있는 중앙부처의 간부급(4급이상) 공무원 60명 중 전별금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전별금 관행이 최근 몇년 사이에 급속히 사라지고 있고 액수도 현저히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간부의 말이다.
■어떻게 거두나…………………………
전별금을 주는 쪽은 대략 △지역 기관장 △직장 동료 △지역 유지와 업체 등으로 구분할수 있다.
최근 지방기관장을 지낸 한 국장급 공무원은 “지역마다 구성돼 있는 기관장 모임에서 기금을 모으거나 몇만원씩 갹출해 수십만원짜리 봉투를 만들어준다”고 전했다. 이른바 힘있는 기관뿐만 아니라 기상대 우체국 등 어떤 기관장이든 떠날 때는 예외 없이 전별금을 챙겨준다.
업체나 유지들로부터의 전별금은 부하직원이 챙겨주는 경우가 많다. 한 지방관서의 주사는 “간부급의 인사발령이 내정되면 아래 직원이 관내 주요 기업에 전화로 귀띔해 준다. 또 신문에 난 인사발령을 보고 찾아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별금은 어떤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라져야 할 관행임은 분명하다. 금전은 시기의 문제만 있을 뿐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대가와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별금 명목으로 관내 업소들에 일정액을 분담한다거나 사회의 통념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거액을 전별금으로 받는 행위는 부패와 다름 없다. 다행히 전별금 관행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행정학)교수의 말이다.
“사회가 갈수록 민주화 서구화되면서 우선 주는 쪽에서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받는 쪽 역시 전별금에 신경쓸 정도면 공무원으로서는 이미 크게 성공하기 틀린 사람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굳이 원하지도 않는 추세다. 양쪽 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柳錫春)교수는 “전별금은 서양식으로 보면 부정부패인게 틀림 없지만 우리 풍속에선 ‘부패’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긴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전별금 관행은 반드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더이상 용인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