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같이 나라가 어수선할 때에도
봄이며는 매천 선생이 종자를 거느리고
왔다는 구례군 산동면 산위마을로
나는 근근이 와서 돌틈으로 흐르는
물 보며 우수가 저만큼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성급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카메라에 봄을 담느라 바쁘고
빈집 놈새밭에서는 봄풀들이 돋아나
성하다 쉰을 넘었음직한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와 빈집 사려고
그러느냐고 묻는다 나는 웃는다 그런
나를 살펴선지 담장의 산수유꽃들이
피다 말고 떨어져 붉은 물
풀며 흘러간다
―시집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문학과지성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