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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경찰청 조사과 실상①

입력 | 1999-02-08 19:48:00


《서울 정부 세종로 청사에서 사직터널쪽으로 3백∼4백m쯤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배화여고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로 접어들면 왼쪽으로 사직파출소가 보이고 그 옆으로 다시 흰색 담으로 둘러싸인 3층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굳게 닫힌 철대문과 철조망이 쳐져있는 높은 담벼락이 왠지 음산한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이 바로 청와대 하명사건을 조사하고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전문적으로 내사하는 이른바 ‘사직동팀’의 사무실이다. 물론 ‘사직동팀’은 사직동에 있다고 해서 세간에서 붙인 이름이고 공식 명칭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다.

사직동팀은 예나 지금이나 두려움의 대상이다.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일반 검경(檢警)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높고 깊숙한 곳의 비리를 캐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폐해도 컸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정권 안보’의 첨병으로서 집권세력이 미워하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약점을 캐내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사직동팀은 오늘도 건재하다. 반세기만에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내사와 정보수집에 여념이 없다. 오히려 활동이 강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사직동팀의 실체를 2회에 걸쳐 벗겨본다.》

96년 3월. 은행감독원 검사역이던 이모씨. 대검찰청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상급자로부터 “잠시 다른 일을 좀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새로운 임무는 누군가의 계좌를 추적하는 일이었다. 청와대의 협조요청이 있어서 하는 일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더 이상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 몇달은 ‘김을×’ ‘윤학×’ ‘최동×’ 등 가차명(假借名)계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3개월 정도 역추적을 해 나가자 낯익은 정치인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현 국회 IMF환란조사특위 위원 이름도 끼어있다. 곧 “정치인 비자금 추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협조요청 기관이 사직동팀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97년 10월 7일. 이씨는 TV를 통해 강삼재(姜三載)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읽어내려가는 ‘DJ 친인척 비자금 계좌 폭로’발표를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물론 내용은 자신과 동료들이 추적했던 계좌들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렇듯 97년 대선정국을 뒤흔든 ‘DJ 비자금사건’은 2년여전부터 은밀히 준비됐고 실제로 작업을 주도한 기관은 사직동팀이었다.

DJ가 정계에 복귀한 후인 95년 10월. 천사녕 당시 사직동팀장(현 인천경찰청 차장)은 청와대 배재욱(裵在昱) 사정비서관으로부터 “DJ의 비자금으로 보이는 20억원어치의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가 불법 실명전환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DJ의 자금출처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팀의 속성상 지시는 곧 명령이었다. 천씨의 증언이다.

“그분들(청와대)은 우리에겐 ‘구름위에 있는 존재’였다.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봤고 우린 심부름만 했다.”

사직동팀은 당시 김용진 은행감독원장과 백원구 증권감독원장에게 협조를 요구했고 △팀원 2명 △은감원 검사6국 직원 12명 △증감원 검사총괄국 직원 5명으로 5개 계좌추적팀을 편성했다.

작업은 철저한 역할분담 속에서 이뤄졌다. 한 전직 사직동팀원은 “우리는 배비서관이 전해주는 계좌번호가 적힌 메모를 은감원 직원에게 전달해 주고 그 결과만 받아서 보고했다”고 말했다. 한 은감원 직원의 설명이다.

“사직동에 파견나간 것은 아니고 은감원에 있으면서 수시로 지시를 받았다. 계좌와 지점이 적힌 메모를 받으면 감독국장으로부터 ‘금융거래 정보내용 제공의뢰서’를 발급받아 해당 지점으로 계좌추적을 나갔다. 은행 수시검사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영장 없이도 가능했다. 공문에는 그럴듯하게 전혀 다른 조사이유를 기재했다.”

96년 3월부터 2년간 은감원 검사6국장으로 있었던 김상우(金相宇)금감원 기획조정국장은 “차출된 직원들은 사직동팀의 직접 지휘를 받았고 우리쪽에는 보고하지 않았다”면서 “사정은 당시 이수휴(李秀烋)은감원장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은감원 직원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사직동팀이 넘겨주는 추적대상 계좌를 누가 어디서 빼오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계좌추적에 참가했던 한 검사역은 “주로 국세청을 통해 계좌정보를 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계좌추적이 진행되면서 대상은 DJ 친인척 41명의 명의로 된 3백42개의 계좌는 물론이고 대우 삼성 등 대기업을 포함해 7백여개 계좌로 확대됐다. 작업이 커지자 동원된 은감원 직원이 한 때 20명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사직동팀장(조사과장)은 96년 1월 천사녕씨에서 박재목씨(현 서울 남부경찰서장)로 바뀌었다. 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천팀장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DJ대선자금 파일이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러다 천씨가 경기경찰청 차장으로 나가고 박씨가 왔다. 박팀장은 홍인길(洪仁吉)총무수석과 동아대 동창으로 매우 적극적이었다. 국세청 파견관 이모씨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박씨의 말은 조금 다르다.

“천씨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을때 이런 일(DJ비자금 추적)을 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래도 되느냐’고 하니 천씨는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더라.”

이들의 증언은 당시 조사과 내부에서도 DJ계좌추적을 반드시 달가워 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준다.

95년 10월에 시작된 작업은 2년여만인 97년 9월에 끝났다. 배비서관은 취합된 자료를 모두 정리해 신한국당의 정형근(鄭亨根)의원에게 전달했다. 대선을 불과 2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물론 당시 사직동팀의 예금계좌 불법추적은 DJ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초 DJ 비자금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검사는 “공식 수사결과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JP(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그리고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윤곽이 구체화되자 후보였던 이인제(李仁濟) 이한동(李漢東) 김덕룡(金德龍) 등 ‘9룡’(龍)에 대해서도 계좌추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추적은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문제에 대한 사전 점검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어서 철저한 추적은 아니었다고 그는 부연했다.

한 검사는 “‘9룡’들이 자신들에 대한 사직동팀의 내사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이인제씨 외에 반발한 사람은 없었다”고 전했다.

98년 초 대검 수사에서 명확히 공개되지 않은 부분은 당시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사전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

사직동팀의 한 팀원은 “YS가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 심증은 가나 그 부분은 확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도 “YS가 보고받지 않았다는 것은 공식수사결과 발표일 뿐”이라며 “조사내용 중 오프(비공개)를 전제로 들은 것이 있지만 이를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당시 배전비서관이 사직동팀을 동원해 수집한 방대한 정보들, 이른바 ‘배재욱 파일’로 불리는 그 정보들은 아직도 남아있을까.

“지난해 초 DJ비자금 수사 때 배전비서관이 구속되지 않았던 것은 (배전비서관 98년 11월에 진로그룹 수뢰사건으로 구속) 파일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배전비서관이 대선직후 파일을 다 파기해버렸다”는 주장이 있어 정확한 실상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 ‘사직동팀’ 탄생서 오늘날까지

일명 ‘사직동팀’으로 불리는 경찰청 조사과의 뿌리는 72년 발족한 ‘치안본부 특별수사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별수사대는 그해 6월 “미국의 FBI와 같은 조직을 만들라”는 김현옥내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처음 만들어졌다.

특수대는 청와대 특명사항 수사,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비위에 대한 정보수집을 하다보니 ‘정권의 사설정보기관’ ‘한 조직에 너무 과도한 힘이 몰려있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76년 특수1대와 특수2대로 분리해 1대는 청와대 특명사건, 2대는 치안본부 자체 기획수사를 맡았는데 별도 사무실의 장소를 따서 각각 사직동팀과 신길동팀으로 불렸다.

80년 신군부 집권 후에는 합동수사본부 5국으로 잠시 통합됐다. 김종필 이후락씨 등 정치인 고문, 80년 10·27법난때의 승려 고문 등이 여기서 자행됐다. 그러다 특수2대는 80년대말 경찰청 공식편제로 흡수되고 신길동 사무실도 폐쇄됐다. 현재는 특수수사과로 이름이 바뀌어 청와대 사칭사건, 공직기강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특수1대는 계속 사직동에 사무실을 둔 채 이름만 조사과로 바뀌어 청와대 직할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직동팀과 특수수사과는 ‘치안본부 특별수사대’라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흔히 동일한 조직으로 혼동되곤 하지만 이처럼 담당업무와 보고라인이 엄연히 다른 조직이다.

◇동아포커스팀

팀장 이재호 정치부차장 이기홍(사회부) 박현진(경제부) 윤종구(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