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미륵사지로 떠나고
나는 미륵사지 밖에 남는다
속눈썹밑으로곧, 어둠이찾아온다
무왕과 오층 석탑 그곳 미륵사지엔
푹 삭은 시간이 키우는 화살나무 하나가
무거운 잎 뚝뚝 떨구고 있을 것이다 누룩처럼 끓어오르던
검은 것들이 땅 속에서 꿈틀, 몸 비틀 것이다.
죽음마저도 증명할 수 없는
왕조와 한 사람의 생애, 그 어두운 바깥쪽을 서성이며
나는 몇 개의 열쇠를 비틀어 집으로 돌아온다
횃대 속의 닭들이 백제식으로! 푸드득 방 안으로 따라 들어오고
문지방 성큼 넘는 왕의 곤룡포가 형광 불빛에 흔들린다
종이배처럼 접혀져 앉은 왕과, 갓낳은 닭의 알과
이끼의 시간을 켜켜
단층을 이루는 마음 안쪽에
오층 석탑 미륵사지 빈 뜰이 환하게 불을 켠다
나는 천천히 열쇠를 틀어 나를 잠근다, 아무도
미륵사지 안으로 걸어 들어오지 못한다.
―‘문학사상’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