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찰 자폭하라.’
군사정권 시절 시국사범 재판정에서나 있었던 구호가 10일 오후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터져 나왔다.
97년 국세청을 동원해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총재의 동생 회성(會晟)씨에 대한 ‘세풍(稅風)’2차 공판에서 한 방청객이 목소리를 높인 것.
이날 한나라당측 변호인은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검찰 신문사항은 정치적인 선전문구다” “한나라당을 음해하기 위한 정치음모다”는 등의 주장을 내세워 검찰신문을 중단시켜 줄 것을 재판장에게 요구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방청석을 메운 탓인지 법정 곳곳에서는 웅성거림이 계속됐고 급기야 이같은 구호가 터졌다. 재판정은 한동안 이 구호에 동조하는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27부 채규성(蔡奎成)부장판사는 즉각 이를 제지했지만 대검 중수부 검사들의 얼굴은 흑빛으로 변했다.
정인봉(鄭寅鳳)변호사는 “검찰의 태도는 ‘성공한 대선자금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강한 어조로 검찰을 공격했다.
변호인단은 심지어 재판부 기피를 신청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잠시후 발언을 신청한 이승구(李承玖)대검중수1과장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는 “형사재판에서 검찰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재판장에게 변호인단의 공세를 제지해 달라는 요청을 했을 뿐이었다.
심재륜(沈在淪)대구고검장의 성명발표와 ‘검찰파동’에서 불거진 ‘정치검찰’시비가 재판정에까지 이어지자 몹시 당혹스러운 모습이었다.
검찰은 이날 회성씨와 대선 당시 이회창후보의 비선조직으로 알려진 ‘부국팀’의 연관성을 밝힐 작정이었으나 신문사항을 대부분 생략했다.
한 방청객은 “의도야 어떻든 ‘검찰파동’을 겪으면서 내상을 입은 검찰의 약점을 악용해 ‘정치재판’을 하려는 정치권의 의도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