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이후 한동안 ‘공동운명체’로 단결된 면모를 보이던 5대그룹의 ‘재벌연합’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먹고 먹히는’ 빅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신사업을 두고 경쟁국면이 구체화하면서 재벌 그룹간 갈등 분열하는 현상이 노골화하고 있다. 일부에선 감정의 골이 깊어져 원색적으로 반목하는 경향도 뚜렸하다.
11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연례총회는 김우중(金宇中)회장의 2기 연임과 회장단개편, 전경련 개혁방안이 확정되는 가장 중요한 모임. 그러나 5대그룹중 이건희(李健熙)삼성 구본무(具本茂)LG회장은 불참했다.
이회장은 지난해 10월22일 정재계간담회에 얼굴을 내민 이후 한번도 전경련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2월 김회장이 최종현(崔鍾賢)회장의 대행을 맡은 이후 전경련 행사에 적극적이었고 지난 여름 김우중회장과 부부동반 모임을 가졌던 때와 비교하면 ‘찬 바람이 이는’ 냉랭함이 느껴질 정도.
LG의 구회장도 지난 연말 반도체 통합협상 이후 전경련 모임에 일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구회장측이 최근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전경련 행사에 굳이 나오지 않겠다는 뜻을 전경련에 밝힌 것으로 알고있다”며 “현대보다도 중재를 맡았던 전경련측에 더 서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회장이 재계 주장(主將)으로 나섰던 지난해 중반 총수들은 정부 정책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 정부의 재벌공세에 맞서 ‘한배를 탔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대가 금융 자동차 대북사업 등에서 일방적으로 사세를 불리면서 나머지 4대그룹 사이에선 경계심리가 되살아났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이후 빅딜대상이 반도체 자동차 전자 등 몸통사업으로 이어지자 사분오열 양상이 뚜렸해졌다.
삼성―대우는 자동차 전자, 현대―LG는 반도체, 현대―대우는 중형잠수함 그리고 데이콤의 경영권을 놓고는 삼성―LG가 미묘하게 꼬여 있다.
반도체사업을 현대에 넘겨줄 LG내에선 “LG전자가 현대전자로부터 반도체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그런가하면 삼성내에선 “대표적 미래사업이었던 자동차를 임직원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포기했는 데 대우가 과도한 손실분담을 요구하는 데 대해 그룹 수뇌부가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고 대우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4대그룹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SK그룹도 이동통신분야 구조조정이 현실화하면 LG와 충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벌연합에 균열이 생기면서 전경련 김우중회장체제의 앞날은 한결 험난해졌다. 전경련 회장단에 전문경영인이나 업종별 대표를 영입한 것도 이같은 상황에서 전경련의 구심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김회장은 회장 연임이 확정된 뒤 “회사 운영과 재계 공동현안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며 “조만간 주요 그룹 총수들을 초청해 오해를 푸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으나 갈등 봉합이 쉽게 될지는 미지수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