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학준 칼럼]국민이 슬퍼하는 죽음

입력 | 1999-02-12 19:08:00


정치지도자가 죽었을 때 국민의 반응은 대개 다섯 갈래로 나타난다. 첫째는 기쁨이다. 스탈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철(鐵)의 인간’이란 뜻을 지닌 스탈린이란 필명에 걸맞게 철권을 휘둘렀던 독재자가 죽었다는 사실이 발표됐을 때 소련 국민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대통령의 경우 20여년에 걸친 절대권력자로서의 생애가 국민 봉기로 마감됐을 때 루마니아 국민은 환호작약했다. 그렇게 하고도 그에 대한 미움은 너무나 커서 총살당한 그의 시신은 1년 넘게 묏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 死後반응 다섯가지 ▼

둘째는 슬픔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인도의 네루총리,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대통령, 그리고 며칠전에 별세한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총리가 죽은 직후의 한식날 때는 수백만명의 추모객이 베이징(北京)에 몰려와 그를 핍박했던 당대의 집권세력 4인방을 성토하기에 이르러 그들은 민중봉기가 뒤따르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 했다. 중국 현대사의 거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죽었을 때도 중국 전역에서 국민이 눈물을 흘렸다.

슬픔은 뒷날에야 나타나기도 했다. 헝가리의 반소(反蘇)자유화 운동을 이끌었던 나기가 소련침공군에 의해 피살됐을 때 헝가리 국민은 공개적으로는 울 수 없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나 헝가리에 대한 소련의 지배가 약화되자 그동안 버려졌던 그의 유해를 찾아내 국장을 치러 주면서 마음껏 눈물을 흘렸다.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도 비슷했다.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에 맞서 스스로 총을 들고 싸우다 죽었을 때 칠레 국민은 공개적으로는 슬픔의 뜻을 나타낼 수 없었다. 그러나 20여년 뒤 민정이 회복되자 그동안 지방의 한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혔던 그의 유해를 수도의 중앙국립묘지로 화려하게 이장하면서 실컷 울었다.

▼ 김구-신익희-조병옥 ▼

셋째는 기뻐하는 쪽도 있지만 슬퍼하는 쪽도 있는 가운데 상당한 수준의 예우를 베푸는 경우이다. 헝가리의 카다르가 여기에 속한다. 카다르는 나기와 함께 자유화운동을 이끌다가 소련침공군에 회유되어 동지들을 배반하고 친소괴뢰정권을 세우는 데 앞장선 뒤 30년 가까이 통치했다. 그가 죽었을 때 헝가리는 이미 자유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따라서 그의 장례식은 초라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애도의 행렬을 이뤄 주었다. 그들은 그의 집권과정이 정당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의 통치아래 조국이 다른 어느 공산국가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번영했음을 인정했던 것이다.

넷째는 경멸이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이 이 경우에 속한다. 그가 민중봉기로 도망쳤을 때 기뻐했던 국민은 그가 망명지에서 병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30년 가까운 집권기간 부정축재한 거만(巨萬)의 재산도 그를 질병으로부터 구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를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째는 무관심이다. 그래서 빠르게 잊혀지고 말며 그 뒤의 추도식은 가족행사로 끝나고 만다. 뜻밖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지 않은 정치지도자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요즈음 전직 대통령들의 언동이 시정의 화제로 떠오르는 것을 보며 대한민국 50년사에 등장했던 정치지도자들의 죽음을 비교해 본다.

▼ 정치인들 교훈삼아야 ▼

전국적인 슬픔속에, 온 국민의 눈물속에 영결한 정치지도자가 몇이나 됐던가. 올해로 암살 5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 제1야당 대통령 후보로 급서한 신익희(申翼熙)와 조병옥(趙炳玉) 정도가 아니었던가.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은 ‘국부’와 ‘부정선거’의 엇갈리는 이미지 속에, 그리고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민주헌정의 파괴자’와 ‘조국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상반된 평가속에 애증이 교차했던 경우에 속한다. 윤보선(尹潽善)대통령과 장면(張勉)총리, 올해로 처형 40주년을 맞는 혁신운동지도자 조봉암(曺奉岩)의 경우는 어디에 속할까. 그뒤는? 안타깝게도 최근의 평론집 ‘전직대통령이 죽는 날 우리도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의 제목이 자꾸 떠오른다. 정치인은 자신이 죽었을 때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까를 미리 생각하며 매사 올바르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김학준(본사 논설고문·인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