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중장기 국방정책을 내놓았다. 수년 전부터 연구돼 오다가 현정부가 확정시킨 것으로, 의미있는 대목과 함께 논란의 소지도 안고 있다. 우선 큰 틀로 보아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겠다면서 새로이 군사력증강을 꾀하는 것은 또 무엇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초 국가안보회의에서도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이라는 평화적 방법으로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햇볕정책과 탈냉전을 강조하는 현정부의 안보정책 기조에 대규모 방위력증강 사업이 어떻게 조화될지 주목된다.
힘 없는 나라는 협상력도 갖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인 것은 분명하다. 강한 군사력으로 국가안보를 굳건히 하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력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이상적인 국방정책이라 해도 국민 담세능력에 비추어 무리한 예산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공론(空論)이 될 수밖에 없다. 기획예산위의 재정계획은 2002년까지 국방비증가율을 매년 4%로 잡았는데도 국방부 방위력개선안은 내년부터 5% 이상씩 국방비증액을 전제로 하고 있는 점도 그렇다. 제한된 국가자원의 범위내에서 방위력을 극대화하는 데 지혜를 모으는 노력없이 선진국형 첨단무기 위주로 방위력이 개선되기는 어렵다. 그 점에서 본란은 한반도 환경에 걸맞은 한국형 무기체계와 전략교리 개발을 주문한 바 있다.
2004년까지 81조5천억원을 쓰게 될 국방부가 그 많은 예산을 한푼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는지도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그동안 국방부는 각종 무기도입 비리와 바가지 조달로 숱한 비난을 받아왔다. 이번과 같은 방위력개선안을 시행하면서 국방부는 철저한 예산합리화를 병행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값이 싸고 제조기술 이전에도 유리한 조건의 무기를 선택할 수 있는 도입선 다변화다. 연합작전을 수행하는 미군의 무기체계와 다른 것을 사들이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지출되는 무기값이 한미 교역총액에 반영되지 않는 것도 이번 기회에 시정돼야 한다. 무기도입액을 고려하면 우리가 대미교역 흑자국으로서 받아온 통상압력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무기가 일반상품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것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그 액수에 해당하는 국산장비를 수출하는 절충교역(Offset)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한편 국방부가 현존하는 북한위협과 구분해서 미래의 불확실한 안보환경에 대비하는 ‘21세기 국방기본정책서’를 마련한 것은 타당하다. 한반도 통일 후의 주변군사력을 가상한 대책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예산도 대규모로 소요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책서가 그만한 대전략으로 정밀하게 다듬어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