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에 즈음한 ‘국민과의 TV대화’(21일)와 내외신 기자회견(24일)을 통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그동안 구상해온 현정치의 개혁방안을 국민에게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난관을 뚫고 겨우 환란(換亂)의 터널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는데도 안팎의 도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상당한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권1년이 ‘저평가(低評價)’되고 있는 근인으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를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부쩍 정치개혁을 강조하는 것도 퇴행적인 정치를 청산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라고 측근들은 설명했다.
김대통령이 과거의 그릇된 정치자금 수수관행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정치개혁을 하려면 ‘과거의 족쇄’를 풀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정치권의 자기고백과 국민의 납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대통령은 TV대화와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실무자들이 올린 예상질문에 92년 대선비자금 문제 등 과거의 정치자금 수수관행에 대한 항목이 빠져 있자 이를 추가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임자들이 끊지 못한 ‘과거의 사슬’을 자신이라도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김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앞으로 대통령 나올 일도 없는 사람이고 국회의원 나올 일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새겨볼 만하다. 경제청문회를 통해 과거정권의 정경유착과 ‘검은 정치자금’ 수수의 실체가 일부나마 밝혀진 것도 그의 결심을 굳히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심의 초점은 과거의 그릇된 정치자금 수수관행에 대한 김대통령의 언급 수준이다. 그에 따라 정치인 중 사실상 아무도 자유스러울 수 없었던 과거의 정치자금에 대한 처리방향과 강도 및 국민의 납득과 야당의 대응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일단 자신도 경위야 어떻든 과거의 관행에 젖어 있었던 정치인 중 하나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권력의 집요한 감시와 견제를 받으며 야당만 해온 자신은 정경유착이나 이권청탁 등 부정하고 불법한 방법에 의해 돈을 받은 일이 없으며 그 규모도 구여권에 비교가 될 수 없음을 밝힐 것같다.
김대통령이 과거 관행의 한 당사자로서 국민 앞에 사과한다면 이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하나는과거관행에 대한 정치적 사면의 의미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상대방인 야당 또한 국민 앞에 자기고백과 사과를 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다. 특히 경제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에 대한 촉구의 의미가 강하다.
김대통령은 ‘정치적 사면’의 기준시점으로 후원회 등 법에 정해진 이외의 절차와 방법으로 수수한 모든 정치자금을 처벌하는 쪽으로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97년11월을 상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김대통령이 엄단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국세청 대선자금 불법모금사건은 그 이후까지 계속된 사건이다.
〈임채청·양기대기자〉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