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포동 할아버지’ 홍순영씨(79).
1920년생인 그는 동아일보가 창간된 해에 태어났다.
36년 손기정옹의 올림픽 제패 소식을 동아일보를 통해 알았고 이후 해방 한국전쟁 등 한국의 격동사를 동아일보와 함께 헤쳐나왔다.
그래서일까. 그가 제70회 동아마라톤대회를 맞는 감회는 남다르다. 자신보다 9살 동생이지만 거친 시대를 함께 달려온 만큼 진한 동지애를 느낀다.
이런 그가 이번 동아마라톤 마스터스부문 하프코스에 참가 신청을 한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
비록 8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97년부터 이번까지 3회 연속 출전. 기록도 1시간 42분대로 웬만한 젊은 사람들 뺨칠정도.
한국노장마라톤협회를 거쳐 한국베테랑육상경기연맹 인천지회장을 20년째 맡아온 그는 지금도 10㎞정도는 ‘40대 젊은이’들을 따돌리고 일등을 차지한다. 우승 상장만도 40개가 넘는다.
왕성한 체력때문에 수차례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15년째 신포동 노인회장을 맡아 왔다. 60∼70대 젊은 할아버지들은 그 앞에서 감히 “늙어서”라는 넋두리를 못꺼낸다.
그가 처음 마라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시계 때문.
충남 천안군 풍세면 남관리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서당을 다니다 읍내 초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까지는 20리(8㎞)길. 먼동이 터올 무렵 마을앞을 지나는 서울행 기차 소리에 일어나 물로 배를 채우고 서둘러 집을 나서면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행여나 기적소리를 못듣는 날은 어김없이 20리길을 뛰어야 했다. 동네에 시계라곤 없어 늦었는지 아닌지 짐작할 방법이 없었던 것. 덕분에 학교 대표 마라톤 선수가 됐다.
16살에 인천 신포동에 있던 상업전수학교로 유학을 왔다. 이후론 주경야독. 마라톤을 할 시간은 엄두도 못냈다. 그가 다시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후 위장병이 생긴 후부터. 6년전 작고한 아내 이병연씨가 열렬한 후원자가 됐다.
그는 얼마전 이봉주(코오롱)가 대회전 찹쌀밥을 먹는다는 보도를 접하고 목이 메어 울었다. 자신이 마라톤대회에 출전할때마다 생전의 아내가 찹쌀 도시락을 꼭 챙겨주었던 일이 생각났던 것.
그는 젊은 할아버지들을 이끌고 인천 자유공원과 월미도 일대에서 매일 6㎞를 달린다. 초등학교 방학때는 한자교실을 열어 아이들의 훈장 노릇도 한다.
“우리때는 없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했다. 요즘 경제난으로 조금 힘들다고 젊은 사람들이 위축돼서야 쓰나.”
영원한 젊은 오빠 홍순영씨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