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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잘란 체포]유럽 실리찾기에 찬밥된 오잘란

입력 | 1999-02-19 19:54:00


쿠르드족 반군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체포된 이후 유럽의 뒤숭숭함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유럽 각국은 ‘피해자’이기에 앞서 오잘란 사태를 부른 ‘공범’들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잘란의 수행원으로 체포당시 상황을 직접 본 셈세 킬리치는 “오잘란이 그리스를 떠나 케냐로 갈 때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는 줄 알고 있었으며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터키특공대에 체포되기 전까지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가는 줄로 알았다”고 밝혔다.

체포되는 순간까지 자신의 갈 곳을 전혀 몰랐던 오잘란의 떠돌이 인생은 쿠르드족의 불행한 역사를 상징이라도 하듯 그대로 닮았다.

쿠르드족은 4천년 동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온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 오잘란 역시 체포 직전까지 한 몸 추스를 곳을 찾지 못해 수없이 많은 국가의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말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이 15년 동안 머물고 있던 시리아를 떠난 후 오잘란은 가는 곳마다 혼란과 갈등을 부르는 달갑잖은 존재였다.

시리아는 오잘란의 무장독립투쟁을 지원해왔으나 터키가 4만명의 무장병력을 국경에 배치하는 등 군사적 위협을 가하자 이에 굴복, 그를 내쫓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는 러시아 정보국의 도움으로 모스크바에 도착했지만 러시아정부가 주요 무역상대국인 터키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출국시키는 바람에 11월12일 러시아를 떠났다. 그후 그는 이탈리아 로마공항에서 전격 체포됐다.

이탈리아는 이미 체포영장을 발부한 독일에 신병인수를 요청했다. 오잘란은 독일에서 정식 재판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독일은 자국 내의 쿠르드인과 터키인간의 갈등을 우려해 이를 거부했다. 그후 오잘란은 1월16일 로마에서 추방됐다. 그는 스위스 신유고연방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등에 차례로 망명을 호소했으나 모두에 외면당했다.

오잘란은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쿠르드족의 상황을 직접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오잘란의 독일변호사 브리타 뷔를러는 “유럽 국가들은 소수민족의 자치권과 인권을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문을 두드리면 빗장을 닫아 걸기에 바빴다”고 한탄했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