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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세상]사서삼경 꿰는 티코노프 경희대교수

입력 | 1999-02-21 18:42:00


한국이름 ‘박노자’. 한국사람보다 한문을 더 많이 아는 28세의 러시아인. 사서삼경에 한자족보까지 줄줄 왼다.

경희대 러시아어과 블라디미르 티코노프교수다.

이름을 한자(漢字)로 어떻게 쓰느냐는 물음에 즉석에서 또박또박 ‘露子’라고 써보였다.

“노자(老子)를 좋아하지만 젊은 사람이 ‘늙을 로’자를 쓰기가 뭣해서 ‘이슬 로’를 쓴다”는 설명까지 덧붙이며….

구한말 러시아를 ‘노서아(露西亞)’로 표기했으니 러시아사람이란 뜻도 된다.

지도교수였던 모스크바대 박미하일교수가 지어준 이름이다.

상트페테르부르그 태생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월반을 해 16세에 레닌그라드대학에 입학한 수재. 어릴때 러시아어로 읽은 ‘구운몽’ ‘춘향전’같은 소설의 이국적이고 동화같은 마력에 끌려 한국역사를 평생의 업(業)으로 택하게 됐다.

최근의 한글 한자 병용 논쟁에 대해 그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이해하려면 한자는 필수”라고 말한다.

오히려 한자혼용을 하지 않고 번거롭게 한자병용을 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다.

얼마전 어느 잡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나중에 기사를 보니 자신을 “22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라고 묘사했단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재원(才媛)은 ‘재주가 있는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얼마나 한자를 모르는지를 보여주는 예지요”하며 웃는다.

한국어와 한문에 능통한 티코노프교수이지만 한반도에 와본 것은 91년 3개월간 고려대에서 연수한 것이 전부.

레닌그라드대에서 동양학을 공부할때 북한에서 만든 ‘외국인을 위한 조선말 교재’와 중국 고전들을 읽으면서 한국어와 한문을 두루 익혔다고 한다.

영어 프랑스어 등은 이미 고등학교이전에 ‘뗐다’고 하니 러시아의 조기교육 또는 외국어교육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동서양의 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그와 이야기하다보면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의 깊이에 새삼스럽게 감탄할 정도.

러시아에 유학갔던 바이올리니스트 백명정씨(30)와 결혼해 97년 한국에 왔다.

〈신연수기자〉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