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즘(Harmonism)은 김흥수화백(78)이 77년부터 주장해온 작품 기법이다. 조형주의(調型主義)로 풀이되는 하모니즘은 면을 분할하고 구상과 추상을 나란히 배치, 보이는 세계와 볼 수 없는 세계를 한 화면에 담는다.
그러나 20여년 동안 김화백이 줄곧 내세웠지만 하모니즘은 국내 화단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방식도 낯설었고 이론적 뒷받침도 탄탄치 못했기 때문.
그런데 뜻밖에 국내 중견화가 10명이 참가하는 ‘하모니즘 텐’전이 26일∼3월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청작화랑(02―549―3112)에서 열린다.
참여 작가는 김흥수화백을 비롯, 구자승 이숙자 김병종 이두식 장순업 오용길 이왈종 장혜용 황주리씨. 모두 국내 화단의 대표 작가들로 하모니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드러낼 작품 2,3점씩 선보인다.
극사실주의 작가인 구자승교수(상명대)는 사진처럼 선명한 실경을 배경으로 정물화를 조화시켰다. 면을 가르지 않고 한 작품속에서 구상과 추상의 요소를 아우른다.
이숙자교수(고려대)의 ‘석보상절과 청맥’도 석보상절의 일부를 배경으로 하여 보리 이삭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교수는 “하모니즘의 취지는 한국적 미의식과 20세기의 추상성을 조화시키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실경산수화가인 오용길교수(이화여대)는 면을 갈라 한편에는 실경을, 한편에는 추상을 배치했다. 장순업교수(한남대)도 추상과 구상을 명확하게 대비시킨 경우. 그는 “추상과 구상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하모니즘은 어느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생명의 소리’연작을 내놓은 김병종교수(서울대)는 이들 작가와 다른 견해를 보인다. “하모니즘은 색다른 아이디어이지만 동양화와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 기존의 작품을 출품했다”는 것이 그의 말.
국내 작가들이 하모니즘이라는 울타리를 두르고 같은 전시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 하모니즘에 대한 견해도 여러 갈래여서 어떻게 정리될지도 관심거리다. 김흥수화백은 “추상과 구상이 모두 벽에 부닥친 요즘 미술계에서 하모니즘이 또다른 길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허 엽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