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처남이 부산에 놀러왔을 때의 일이다. 오후 3시경 역으로 마중나가 처남을 태우고 집으로 오던 중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횟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어릴 때부터 생선회를 좋아했던 처남이 지금은 대구에 살고 있어 싱싱한 회를 먹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횟집 앞에 차를 세웠다.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술을 한 병 더 주문할까 하다가 운전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집에 가서 한잔 더 하기로 하고 횟집을 나섰다.
도로로 나서 변속기를 1단에서 2단으로 조작하는 순간 갑자기 앞차가 정지했다. 나도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쿵’소리가 난 뒤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운전경력 10년 만에 처음 내는 사고였다.
앞차 운전자는 차량수리비로 50만원을 요구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경찰 순찰차가 나타났다. 피해운전자가 나를 가리키며 음주운전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경찰서로 연행됐다.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09%.
앞차 수리비를 물어줘야 하는 것은 물론 운전면허정지 1백일과 무거운 벌금이 부과된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다음날 아침 문제가 더 커졌다. 피해자와 함께 근무한다는 사람이 찾아와 부상진단서를 내밀었다. 그는 진단서를 경찰에 내면 어제 교통사고가 ‘인사사고’로 처리돼 구속되고 운전면허도 취소된다며 합의금 1천만원을 요구했다.
확인해 보니 그 사람 말대로 구속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합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정사정해 5백만원을 주고 진단서 제출을 막았다.
‘소주 한 병에 5백만원이라니….’
속이 쓰리고 아팠다. ‘설마’의 대가가 이렇게 클 줄 정말 몰랐다.
손익용(63·부산 동래구 사직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