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산동에 사는 주부 이종희씨(35). 며칠전 남편과 금전문제로 올들어 처음 싸웠다. 남편이 친구에게 20만원을 꾸어주고 함께 술을 마신 뒤 밤12시경 귀가한 것.
“돈을 받을 가능성은 없잖아요. 수입도 줄었는데, 솔직히 아까웠어요. 술마시고 속쓰리다고 하소연하는데 그렇게 미울 수가 없더라구요.”
경제난은 부부싸움의 요인도 바꿔놓은 것일까. 각 상담단체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그렇다. 그러나 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부소장은 “우리의 경우 금전문제가 직접적 원인이라기 보다는 누적된 갈등이 경제위기로 불거져 나오는 걸로 봐야 한다”고 해석.
▽부부싸움은 ‘돈싸움’?〓지난해 미국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 조사에서 미국 기혼자 10명 중 7명이 금전문제 때문에 싸운다고 응답. 미국과 같이 ‘독립채산제’가 아닌 우리의 경우는?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94년 기혼자 1천1백12명을 대상으로 부부싸움 원인을 조사한 결과 일상생활문제(32.5%)가 돈문제(22.9%)보다 많았다.
그러나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해 6월 주부 3백13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요인을 조사한 결과 경제문제가 37.1%로 1위. 96년엔 ‘겨우’ 4위(5.4%)였다. 평소 스트레스와 갈등이 부부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상황이 부부싸움의 주원인으로 부각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경제불황〓금실활황’?〓일본 메이지생명보험이 지난해 일본부부 8백18쌍을 대상으로 ‘경기침체가 부부의 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조사했더니 21%가 ‘정이 두터워진다’는 반응. ‘정이 약해진다’(4.9%)보다 훨씬 많았다.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상담소 유경희사무국장은 “우리의 경우 지난해 초에는 부부가 힘을 합해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려는 자세를 보였으나 불황이 장기화하자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며 “중산층 이상보다는 기층의 경우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편은 때리고 시댁은 애태우고〓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지난해 상담통계에서는 전체 4만6백건 중 ‘남편의 구타’에 대한 하소연이 22.6%로 가장 많았다. 서울여성의전화 상담통계에서도 남편의 구타(26.9%) 및 시댁과의 갈등(11.29%)이 97년(각각 23.9%, 5.0%)보다 늘었다. 그러나 주부 자신의 문제(3.5%)는 97년(5.3%)보다 줄었다.
서울여성의전화 남지향간사는 “IMF시대에 ‘돈을 벌어오라’거나 생활고에 대한 화풀이로 아내를 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