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고 세상은 달라졌어도 일부 고위공직자들의 구시대적인 행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요즘 대학가에서 냉소적인 얘깃거리가 되고 있는 두가지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한가지는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서울대 졸업식에 정부인사로 참석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찬(李海瓚)교육부장관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인해 벌어진 문제다. 둘 다 성격은 다르지만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 발단은 바로 이들의 구태의연한 권위의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김종필총리는 26일 열리는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해 치사를 낭독할 예정이다. 총학생회측은 김총리가 ‘유신독재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즉각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졸업식장에서 일부 학생들이 시위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뜻깊은 졸업식 자리에 외부인사를 초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서울대의 경우 집단퇴장 등 과거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근년에는 가급적 졸업식장에 정치인들을 부르지 않았다. 그런 전례를 깬 것에 무슨 배경이 있는 것인지, 맨 먼저 갖게 되는 의문이다.
서울대의 초청이 국립대로서 의례적인 것이라고 해도 김총리는 초청 수락에 앞서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경우 국정 수행에 미칠 영향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심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총리실은 학생시위 계획이 있다는 경찰의 보고를 받았다면서도 참석 일정에 변함이 없다는점을 강조했다.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반드시 나가겠다는 얘기다.
졸업식은 학생과 가족을 위한 자리다. 국정 책임자로서 이들을 격려하러 나가는 것은 보기 좋은 풍경임에 틀림없으나 그것은 축하받는 학생들이 환영한다는 전제 아래서다. 학생들이 거부운동까지 벌이는 상황에서 안가도 그만인 자리에 굳이 나갈 이유가 있는가. 반대가 있더라도 나가야만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총리 치사가 그렇게 꼭 필요한 것인가.
이해찬교육부장관이 올 대학 신입생 전원에게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지 말고 면학할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보내는 것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편지 한 통으로 젊은이들의 사고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발상이 진부해 보인다. 김총리는 개혁정부의 최고책임자 중 한사람이며 이장관은 교육분야의 개혁을 이끄는 사령탑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관료사회의 의식은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흘러간 가요’를 상기시키는 이들의 행태는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