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국내정치 참모다. 정치판 돌아가는 상황을 빠짐없이 분석 보고해야 하고 대통령의 뜻을 전하기 위해 여야 정당을 방문하는 일도 잦다. 한때는 행정부에 정무장관이 있어 행정부와 정당의 ‘다리’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자리조차 없다. 정무수석은 그야말로 대통령의 정치판 손발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도 여야간 의견이 실타래처럼 꼬인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얽힌 정가의 매듭을 찾으려는 정무수석의 모습이 간간이 언론에 비쳐지기도 했다. 특히 야당에게는 대통령의 뜻을 전하고 반응을 파악해 오는 밀사역할을 할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급적 노출을 꺼렸다. 이강래(李康來)씨도 작년 5월부터 지난 8일까지 약 8개월 동안 그같은 정무수석 일을 했다.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도 안돼 정무수석에 발탁된 이씨는 혼돈에 휩싸였던 지난해 정국 내막을 누구보다 상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평생 동안 입을 열어서는 안될 내용도 있음직하다. 그런 내용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정치판이 워낙 민감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런 이씨가 청와대를 나온지 한달도 안돼 여권이 PK와 연대를 모색했으나 YS가 이견을 보여 실패했다는 등 작년의 정치비화를 털어놓았다는 보도다. 입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하기는 전직대통령이 신임 정무수석을 만나 ‘주막강아지’운운한 말이 곧바로 공개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국을 생각해서라도 폭로성 얘기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백번 옳다. 공개할 명분이 없는 비화를, 그것도 상대방의 감정까지 자극하는 얘기를 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건가.〈남찬순 논설위원〉chans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