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난해 한국의 일본대중문화 개방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언론들은 굵직한 기획물을 내놓으며 한국 현지취재에 열을 올렸다. 막상 제1탄으로 서울에서 개봉된 영화 ‘하나비’와 ‘카게무샤(影武者)’가 인기를 끌지 못하자 적잖게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진짜 실망감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계기로 한일 공동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서울에 갔던 일본의 한 민간 TV 프로듀서(PD)의 체험담을 잊을 수 없다. 이 PD는 제휴관계에 있는 한국 민간방송사를 방문해 개그물 녹화현장을 견학하다가 그 내용이 자기네 것과 너무 비슷해 기겁했다.
그는 녹화현장을 빠져나와 한국 실정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었고 “이대로라면 일본 대중물이 한국에서 어필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 후 그는 “프로그램의 ‘지적 소유권’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체험은 한국 프로그램이 문화개방을 계기로 일본인들 눈에 점차 ‘벌거숭이’ 모습으로 비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일본의 다채널 위성방송인 퍼펙TV 한국어방송 채널을 통해 쏟아지는 프로그램을 보면 낯 뜨겁다는 말을 내뱉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엉뚱한 대답을 유도하는 ‘노인 퀴즈’, ‘보물을 찾아라’, 개그물 ‘가슴을 열어라’, 오락관 스크린을 보고 연예인 알아맞히기 등은 일본 인기물의 재판. 한국어로 말만 바뀐 것들이 한국어방송 채널을 채우고 있다.
이처럼 무차별한 프로그램 베끼기는 문화민족의 자존심을 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돈’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일본이 ‘창작 저작권’문제를 들고 나올지도 모르는 것인다.
윤상삼yoon33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