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다란 회색 콘크리트 벽. 그 위로 끝없이 이어진 철조망. 망루에서 감시의 눈길을 번뜩이는 무장 경비병.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음산한 분위기가 걷히지 않는다.
하지만 콘크리트 벽 바깥쪽은 정반대 세상이다. 상가와 인도는 인파로 북적대고 인근 도로엔 버스와 승용차 행렬이 꼬리를 문다. 길 건너편엔 주택과 고층아파트 숲.
서울 구로구 영등포교도소 주변 고척동과 개봉동의 풍경이다. 교도소를 ‘포위’하고 있는 인근 주택가와 아파트 주민들은 교도소 때문에 겪는 불편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고척동과 개봉동 일대의 개발이 수십년간 제한돼 왔어요. 그 바람에 땅값이나 집값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터무니 없이 낮습니다. 같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승용차로 5분거리인 양천구 목동아파트 시세의 절반도 안돼요.”
고척동에서 25년째‘선우사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선우천일(鮮于千一·60)씨의 말이다.
주민 정철진(鄭哲鎭·58)씨는 “주민 정서나 자녀교육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아 구민들이 오래전부터 교도소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등포교도소가 고척동 100번지에 들어선 건 48년. 20년 뒤 바로 옆에 영등포구치소가 자리잡았다. 면적은 교도소와 구치소를 합쳐 11만6천여㎡. 당시 고척동과 개봉동은 밭과 구릉 뿐이어서 교도소가 들어서도 민원이 없었으나 서울 팽창과 함께 이 일대가 주택가로 변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교도소 주변에 들어선 아파트는 총 61개동 5천여세대. 교도소와 바로 붙어 있는 주택도 1천1백여 가구나 된다. 민원이 거세지자 구로구는 96년과 98년 두차례에 걸쳐 법무부에 영등포교도소의 이전을 건의했다.
법무부는 96년 교도소 이전을 연차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혐오시설을 꺼리는 ‘님비(NIMBY)현상’때문에 이전부지를 선정하지 못해 계획자체를 백지화했다.
박원철(朴元喆)구로구청장은 “당장은 어렵겠지만 서울시와 함께 교도소 이전을 계속 추진하고 그 자리에 체육공원이나 종합복지타운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