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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한구/「金대통령 국민과의 대화」를 보고

입력 | 1999-02-22 08:19:00


‘국민과의 대화’ 생방송을 지켜보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서 국정전반에 걸친 깊은 이해와 과거 업적에 기반을 둔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김대통령은 기업과 사회에 대해 투명성을 요구하고 고발정신 내지 자립정신을 강조하면서 21세기 문화시대를 대비하는 철학을 내비쳤다.

▼‘인기발언 탈피’신선

특히 근로자 대표에게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가 불가피함을 설명한 것은 단기(短期) 인기주의를 극복한 신선한 답변이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어촌 대표에게 농어촌 부채탕감보다 유통구조개선과 농어민 소득증대 방안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실업자들에게눈높이를낮추라는충고도귀담아들을만한 것이었다.

국영기업들의 공공요금 인상이 억제될 수 있도록 투명한 의사결정을 약속하면서 소비자 대표의 참여를 권장한 것도 국민의 공감을 얻을 만했다.

주된 정책방향의 흐름은 지난번에 제시되었던 실업난해소, 경기회복과 구조조정의 병행, 중소기업 육성, 지식산업 육성, 사회안전망 구축 등에 맞추어져 있었다. 대부분이 과거에 여러 경로를 통해 나오던 내용이 되풀이된 까닭에 특별히 새롭다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단지 최고 행정책임자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해 준 효과는 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두시간에 가까운 국민과의 대화를 듣고 김대통령에게 거꾸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았다.

앞으로도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작년처럼 정부 주도로 강행할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 달성’ 등 고지점령식의 획일적 구조조정을 할 것인지도 묻고 싶었다. 이러한 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은 실업자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는지 한번 검토해볼 시점이다. 경기회복을 늦추거나 경기회복을 위해 지출하는 사회적 비용을 늘리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가장 지체된 정부개혁 프로그램을 좀 더 확실히 강조하지 않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금년의 경제회생 과정에서 최대 복병인 정치안정과 노사안정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없어 궁금했다. 이는 추후 실천을 통해 믿음을 주어야 할 문제이다.

금년중 최우선 정책인 실업해결 대책으로 제시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육성, 관광서비스산업 육성은 과거 정부도 계속 내놓았지만 효과적 실천이 안됐던 문제이다. 당장 실직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제조업 출신임을 감안하면 과연 실직자의 전직훈련 프로그램이 얼마나 대규모로 실속있게 진행될지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철저한 구조조정’을 실업자 대책의 중요부분으로 거론한 것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소비권장 아직은 위험

중소기업의 신용대출 확대나 금리인하 시책이 빠른 효과를 보려면 결국 은행 등 금융기관의 손실 가능성을 메워줄 만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또 개인과 중소기업의 과거 신용상태와 관련한 폭넓은 정보가 금융기관망에 공급돼야 한다. 과연 이런 준비가 돼있는지 궁금하다.

경기회복 및 위기관리와 관련해 다양한 정책수단의 선택에 관한 궁금증도 풀리지 않았다.‘건전소비〓미덕’이라고 정부가 직접 나서면서 불확실한 경기회복을 확실한 것처럼 홍보하면 내수경기 회복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부터 다른 나라보다 소비성향이 높은 한국에서 수입이 늘어나고 사회적 위화감이 높아지면 국제수지와 사회 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내수보다는 수출이, 내수 중에는 투자가 소비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그래야만 큰 규모의 외채상환 부담에서 벗어나고 경제주권도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 수출과 효율적 투자촉진이 어려운 만큼 더 진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건전소비를 내세우며 유흥업소 심야영업까지 허용하는 것이 옳은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의 국내투자 유치와 관련해서는 그 당위성이나 중요성보다는 더 궁금한 분야를 빠뜨린 것 같다. 과연 제값 받기의 해외매각인가. 시간에 쫓겨서 추진당하는 강제 매각인가. 미래 산업기반을 고려한 거래인가. 외국인들에 의한 독과점 폐해는 어떻게 처리할까. 외환시장은 안정될 수 있는가.

이런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김대통령이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풀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