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향 장기수 ‘북송1호’는 이인모(李仁模·82). 그는 42년 7개월만인 93년 3월19일 판문점을 통해고향으로 돌아갔다.
1917년 함경북도 풍산군 개마고원 화전지대에서 태어난 이씨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문화부에 소속돼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인민군이 후퇴할 때 남한에 잔류, 지리산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50년 12월 체포돼 7년간 복역하고 출소했으나 61년 5·16쿠데타가 난 직후 다시 투옥돼 88년 청주보안감호소에서 출소할 때까지 34년간을 복역했다.
오랜 감옥생활로 병마에 시달렸던 이씨는 91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93년 3월에는 폐렴과 악성흉막염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송환전까지 부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각 종교 인권단체와 언론들은 ‘노구’의 이씨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측에 송환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건의했으며 93년 3월10일 마침내 정부의 북송결정이 내려졌다.
이씨의 송환은 당시 북한핵 문제로 경색국면을 맞고 있던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찾기 위해 우리 정부가 취한 특단의 조치. 그러나 북측은 이를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소재로만 활용했고 남북관계에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씨의 송환을 강력히 촉구했던 당시 한완상(韓完相)통일부총리는 곤혹스러운 입장이 됐다.
북으로 건너간 이씨는 병원치료로 건강을 되찾은 뒤 평양의 고급아파트에서 부인 김순임씨(72), 딸 현옥씨(50)와 함께 생활하면서 ‘통일영웅’ 대접을 받으며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강연과 연설을 통한 체제선전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