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2일자에서 역대 미국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경제 대통령으로 레이건을 꼽았다. 하버드대 로버트 배로 교수가 채점한 경제성적표는 레이건 집권 1기가 1위, 집권 2기가 3위로 나타나 그의 재임기간이 미국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국이래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라는 환란의 와중에서 정권을 인수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집권 1년간 경제성적표는 몇점쯤 될까.
국민과의 대화에서 김대통령 자신은 “금고문을 열어보니 빚문서 뿐”이던 시절에서 “외환보유고가 5백20억달러를 넘어 위기를 극복”한 상황으로의 반전을 들어 스스로 후한 점수를 매기고 싶어했다. 외양상의 결과만 놓고 볼 때 김대통령의 자평은 틀리지 않는다. 취임 1년만에 환율은 안정상태에 들어섰고 금리는 사상 최저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 신용도는 투자적격으로 올랐다. 이만큼 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문제는 경제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딴판이라는 데 있다.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잉태된 더 큰 문제들이 두고 두고 속을 썩일 것이라는 걱정들이 많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신관치경제가 거론된다. 대통령이 ‘대화’때 자랑처럼 얘기한 “중소기업 대출현황을 청와대가 직접 챙기고 있다”는 말은 스스로 관치를 인정한 작은 증빙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요약되는 김대통령의 경제운용 철학인 DJ노믹스와도 배치된다.
“금융구조조정이 시장논리 보다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됐다”는 정해왕 한국금융연구원장의 말은 금융현장에서 느끼는 신관치경제를 대변한다. 생존을 위해 정글을 빠져나오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첨단 기법이 요구되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 정부주도 경제라는 말은 설득력을 가진다.
기업의 퇴출결정을 시장이 하지 않고 정부가 주도함으로써 빚어진 후유증들은 또 어떤가. 기업은 도전정신을 잃어 미래를 논하기 꺼린다. 빅딜이 지역문제로 번진 것도 알고 보면 정부개입을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게 만든 정부에 책임이 있다.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사유재산권의 보장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시장경제를 축으로 한다는 DJ노믹스가 집행되면서 오히려 가진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특정기업에게 이건 하고 저건 하지 말라는 식의 정부주도 빅딜아래 사유재산권을 말하는 자체가 난센스”라는 전경련 간부의 말은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정부가 기준만 정해주고 인내심있게 지켜 보았다면 소리없이 법적대응을 채비하는 재벌들의 모습도 없었을 것이다.구조적으로 꼬여있는 경제상황에서 잘못된 과거의 행태를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는 고친 관습을 지속토록 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산업의 미래상을 먼저 만들고 구조조정을 시작했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는 바람에 아직 장래 프로그램은 모습이 없다는 것도 잘못이다. 정책이 대증요법식으로 집행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장에서 평가하는 DJ노믹스 1년의 성적표는 썩 좋질 않다. 점수 자체보다 점수에 대한 정부와 경제현장간의 괴리도 문제다. DJ노믹스 1년의 집행과정에서 나타난 이 정부의 성향에 대해 경제계의 우려가 크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2차년도에 그 걱정이 말끔히 해소될 수 없다면 내년 이맘때 채점자간 시각차는 더 커질 것이다.
이규민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