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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향기]이산하「열흘 붉은 꽃 없다」

입력 | 1999-02-24 19:27:00


한 번에 다 필 수도 없겠지만

한 번에 다 붉을 수도 없겠지

피고 지는 것이 어느 날, 문득

득음의 경지에 이른

물방울 속의 먼지처럼

보이다가도 안 보이지

한 번 붉은 잎들

두 번 붉지 않을 꽃들

너희들은 어찌하여

바라보는 눈의 깊이와

받아들이는 마음의 넓이도 없이

다만 피었으므로 지는가

제 무늬 고운 줄 모르고

제 빛깔 고유한 줄 모르면

차라리 피지나 말지

차라리 붉지나 말지

어쩌자고

깊어가는 먼지의 심연처럼

푸른 상처만 어루만지나

어쩌자고

뒤돌아볼 힘도 없이

먼지의 무늬만 세느냐

―계간 ‘문학과 사회’ 9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