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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日예술영화계 代母 다카노 에스코

입력 | 1999-02-24 19:27:00


89년 6월 어느날.초여름의 번잡함이 감도는 일본 도쿄 거리. 제국호텔에서는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결혼식이 열렸다.

에쓰코(悅子)양과 ‘시네마씨’의 결혼식. ‘시네마씨’는 이름 그대로 영화다. 영화평론가가 대역을 맡았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환갑의 에쓰코양이‘시네마씨’와 결혼반지를 교환했다.

여늬 결혼식과 같았지만 각계 유명인사 4백여 하객은 마른 침을 삼켰다. 미혼으로 평생을 영화에 헌신한 신부가 남은 일생 역시 영화에 바치겠다는 숭고한 의식이 모두를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다카노 에쓰코(高野悅子·70)이와나미(岩波)홀 총지배인. 객석 2백20개인 도쿄의 작은 극장 이와나미홀을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화관으로 만든 주인공. 일본 전체의 영화 문화를 지배하는 거인, 일본 예술영화의 대모(代母), 일본 문화계의 대표인물.

영화와 결혼한지 10년을 맞은 그가 70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곱고 또 열정적인 모습으로 23일 처음 한국을 찾았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오다 한국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검은색 롱스커트에 삼단같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다카노는 첫 화제로 한일 문화교류를 꺼냈다.

68년 개관 이래 그가 31년째 운영을 맡고 있는 이와나미홀은 작품성이 뛰어난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이다. 우리나라 배용균(裵鏞均)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비롯, ‘화니와 알렉산더’ ‘게임의 법칙’‘부용진’ 등과 현재 상영중인 ‘송가왕조’까지 1백48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이와나미홀 개관때만 해도 일본에서는 메이저영화사가 전국의 극장에 일률적으로 상업영화를 배급하는 시스템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큰게 좋은 것’이라는 CF유행어가 나올 만큼 작고 아름다운 영화는 대접받지 못한 시대였죠. 이와나미홀은 그런 사회통념에 도전함으로써 일본 문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다카노는 이와나미홀을 배경으로 미니 시어터운동인 ‘에키프 드 시네마(영화의 친구들)’를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은 도쿄에만 1백여개의 미니 시어터가 생겨났을 만큼 예술영화가 탄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중문화, 특히 영화는 그 사회의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창(窓)이지요. 영화를 통해 40여개국의 문화를, 그것도 ‘감동적으로’ 전한 것이 내 역할이었습니다. 89년 상영된 ‘달마가…’에 대해 일본의 저명한 스님이 ‘이 영화를 보면 불경을 읽는 것보다도 불교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바로 영화의 힘이예요.”

그가 ‘영화의 힘’에 매료된 것은 44년 여고2학년때였다. 만저우에서 고교를 다니던 다카노는 ‘해군’이라는 영화를 본 뒤 너무나 감동받은 나머지 사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여자라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분개한 그는 학교 작문시간에 “달리기도 나무오르기도 남자에게 지지않는 나같은 여자는 사관학교 입학을 막으면서 왜 남자들은 군인감이 못되어도 무조건 군대에 보내느냐. 그러면 일본은 전쟁에 진다”고 썼다가 교사에게 혼쭐이 났었다.

일본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 재학때 ‘푸른 산맥’이라는 영화의 관객 조사 숙제를 하다가 극장에 들어가기 전과 나올 때의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 달라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불과 두시간만에 가치관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 영화말고 또 있을까요. 좋은 영화는 사람의 정신에 직접 호소합니다. 내가 감동받은 영화를 만나면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어요.”

다카노의 70평생에는 ‘여성 최초’, 심지어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라는 형용사가 늘 따라다녔다.

58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의 최고영화명문인 고등영화학원에 유학. 감독과의 유일한 여성으로 수석졸업. 64년 TV드라마 연출 때는 일본의 유일한 프리랜서PD. 68년 이와나미홀 총지배인으로 취임했을 때도 일본 7천여개의 극장 중 유일한 여성흥행사였다.

“내 인생은 ‘여자니까 안된다’는 통념과 사회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비상식적으로’ 달려들죠. 뛰다보면 내가 유일한 여자여서 스스로 놀라지만 되돌아가지 않고 그냥 뛰는 겁니다.”

다카노의 방한이 한일 문화교류에 큰 진전을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는 우리 문화계의 기대도 있다. 다카노도 “30,40년대 세계를 놀라게 했던 최승희(崔承喜)의 무용을 김매자(金梅子·창무예술원 이사장)씨의 춤을 통해 잇고 싶다”며 김씨의 무용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고 한국과 일본의 ‘좋은 영화’ 교류방안도 모색하겠다고 했다.

“내 삶의 에너지는 언제나 영화에서 나왔습니다. 그 에너지를 한국인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

◇약력

△29년 5월29일 만주 출생

△51년 일본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 졸업

△52∼58년 영화사 도호(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