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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나은경/동아마라톤 참가자에게

입력 | 1999-02-25 19:24:00


나같은 사람도 마라톤을 뛸 수 있을까? 뉴욕마라톤을 구경하고 나서 풀코스 마라톤을 한 번만 뛰면 당장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마라톤 열병’을 앓기 시작됐다.

나는 학생시절부터 운동에 소질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학생시절에는 오리같이 뛴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뉴욕마라톤을 보고 관심을 표시하자 남편이 “당신도 할수 있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남편의 한마디를 믿고 다음날부터 뛰기 시작했다. 일년동안 흘린 땀이 평생 흘린 것보다 더 많을 정도로 열심히 달리기 연습을 하고 삼십대 중반에 첫 마라톤을 완주하는 순간 강렬한 희열감과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 때까지 나는 어느 한가지에 그렇게 공을 들이고 몸으로 직접 부딪쳐가며 집중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퍼부어 본 적이 없다.

처음 뉴욕마라톤에 도전할 때 목표는 기어서라도 완주를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초보자로서 무난한 4시간24분 기록이 나왔다. 몇년 후에 두번째 마라톤을 뛰었는데 기록이 조금 나아졌다.

보스턴마라톤은 올림픽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참가자의 자격을 심사한다. 참가자 수를 8천명으로 제한하기 위해 정해놓은 엄격한 출전 자격이 오랜 전통과 더불어 이 대회의 권위를 높여준다. 보스턴마라톤에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출전 일년 이내에 공인된 마라톤대회에 나가서 34세 이하의 남자는 3시간10분, 여자는 3시간40분 그리고 매 5세마다 5분씩 가산한 기록 이내에 골인했다는 증명서를 신청서에 첨부해야 한다. 이 기록은 마라톤이 직업이 아닌 사람이 넘보기에는 꽤 어렵다.

나는 보스턴 마라톤 출전 목표를 세우고 기록 단축 계획을 세웠는데 훈련 과정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매주 스피드훈련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면서 5㎞, 10㎞ 기록이 조금씩 향상됐다. 미국의 어느 도시에 가서 뛰든지 내 또래 연령그룹에서 입상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럴수록 연습할 의욕이 생겼고 주말마다 신이 나서 달리기대회에 나가서 트로피를 타왔다.

나는 두달 사이에 세번의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나서야 3시간55분의 기록을 내고 마침내 목표로 정했던 97년 봄에 보스턴마라톤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마라톤에는 요행이 있을 수 없다. 퍼부은 시간과 흘린 땀만큼 성과가 반드시 나오는 정직한 스포츠다. 목표를 정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최선을 다해서 고된 연습과 피나는 노력을 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목표달성을 위해서 애쓰는 과정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모든 면에서 전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달리기라는 행위 자체를 즐기지만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업과 가정 및 대인관계를 비롯한 모든 방면에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인다.

마라톤 훈련이 결코 쉽다고는 할 수 없다. 달리면서 맛보는 즐거움보다는 기록향상 과정에서 겪는 좌절감과 실패와 절망감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신념을 갖고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크고 작은 실패의 좌절감을 극복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될 수 있다.

마라톤을 뛰면서 실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경험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나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올 동아마라톤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마라토너들이 좋은 기록을 내기를 기대한다.

나은경(재미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