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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80돌 특별기획]임정 첫 청사 위치 논란

입력 | 1999-02-25 19:24:00


임정 첫 청사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租界)안의 거리 이름과 번지수가 정치적 변혁에 따라 몇차례 바뀐데다 관련기록도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정 첫 청사는 ‘한국독립운동지혈사(박은식·朴殷植 저)’의 화보에 나오는 태극기가 걸린 2층 양옥. 김신부로 22번지(현재의 서금로 22번지) 현순목사의 집이라는 주장 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성신여대 이현희(李炫熙)교수는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현순목사의 집에서 임시의정원 회의가 열린 것은 사실”이라며 이를 ‘사실상의 청사’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지조사 결과 현순목사가 살았다는 김신부로 22번지는 현재의 서금로 22번지가 아닌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또 임시의정원 회의 개최장소가 김신부로의 어느 곳임은 확실하지만 현순목사의 집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게 학계의 유력한 반론이다.

중국의 학자들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나오는 2층 양옥도 임정의 첫 청사가 아니라 임시의정원 1차회의가 열린 곳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임정은 출범후 32년 윤봉길(尹奉吉)의사 의거 때까지 13년 동안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여러차례 청사를 옮겼다. 일제의 정탐과 탄압을 피하기 위해 22년 10월에는 임정이 프랑스 조계를 떠나 한때 영미 공동조계로 이주했을 정도.

그후 23년 8월에는 임대료를 내지 못해 청사를 당시 재무총장이었던 이시영(李始榮)의 집으로 옮기기도 했다. 임정이 32년 상하이를 떠나 40년 충칭(重慶)에 도착할 때까지 난징(南京) 항저우(杭州) 자싱(嘉興) 전장(鎭江) 광저우(廣州) 등지에서 잠시 머물던 청사들의 소재지는 더욱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