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기형도가 서울 종로 한 심야극장에서 생을 마감한 때는 89년3월7일. 그러나 그의 시는 시인의 육체적 죽음을 넘어섰다. 사후에 발간된 시집 ‘입속의 검은 잎’(89년)의 빛나는 상징들은 90년대 젊은이들의 밀어(密語)가 됐고 그들 사이에 ‘기형도’는 고유명사 아닌 하나의 문화적 암호였다.
사망 10주기를 맞아 발간된 ‘기형도전집’은 그래서 얼마간 새삼스럽다. 그를 추모하자기엔 그의 시가 아직도 너무나 ‘현재형’으로 읽히고 있기 때문에….
3백56쪽짜리 양장본 한권에 다 담긴 기형도의 세계는 ‘입속의 검은 잎’,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90년) 등 기왕에 발간된 책들과 미발표시 20편, 단편소설 ‘겨울의 끝’ 등이다.
대학 초년생 때 쓴 미발표작들은 “기형도 시의 순정한 기원”(편집위원 성석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의 시에 일관된 ‘죽음과의 긴장된 공존’이 은유로 포장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인간에게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무엇이 있어.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의 끝까지 의연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보다 아름다운 행위는 없다고 생각해.”(‘겨울의 끝’중)
문학과지성사. 13,0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