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졸업 직후인 84년. 그는 뉴욕 월 가(街)의 울펀슨사 사장 제임스 울펀슨(현 세계은행총재)과 마주앉았다. 입사 인터뷰였다.
울펀슨은 인터뷰 내내 정트리오 등 세계적인 한국인 음악가 얘기만 했다. “줄리아드음악학교에는 한국인이 참 많더라”고도 했다. 울펀슨은 첼로를 연주하고 콘서트도 자주 찾는 클래식음악 애호가. 인터뷰 말미에 울펀슨이 던진 질문은 단 한가지.
“Are you smart?”
그의 대답은 “Yes.”
며칠 후 합격통보가 날아왔다.
▼일은 재미있는 것
‘연봉 36억원설’로 세간의 화제를 모은 서울증권의 강찬수 공동대표 내정자(38). 연초에 세계적인 헤지펀드 운용자인 조지 소로스를 만나 이 자리를 제안받기 전까지 그는 울펀슨사에서 13년간 근무했다. 처음에는 애널리스트로 일주일에 90시간씩 쉴 새없이 일했고 펜실베니아대 워튼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여러 회사의 인수합병(M&A)에 관여했다.
직업을 택할 때의 기준은 ‘재미있게 할 수 있느냐’. 그는 소로스의 간단명료한 철학이 좋다. ‘회사가 돈 벌면 너도 돈 번다’. 이번 연봉도 90%가 회사 주식값에 연계되어 있다. “운이 좋아 주가가 많이 오르면 국내 최고의 연봉이 될 수도 있지만 ‘0원’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서울의 호텔생활
요즘의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미치겠다’. 오전7시반에 출근했다 밤10시나 되어야 호텔로 돌아가는 생활. 호텔에선 잠만 잔다. 답답하다. 그래도 전화를 받아주고 빨래까지 해주니 편하다고 자위한다. 미국에 있는 아내(35)가 곧 서울로 와서 집을 고를 계획. 아내가 직접 고르도록 해야 ‘혼’이 덜 날 것 같기 때문.
9살짜리 쌍둥이 딸들을 너무 보고 싶다. 사무실에 갖다놓은 아이들 사진 액자만도 여러 개. 매일 전화한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학기가 끝나는 여름에야 이사온다. 암만 바빠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꼭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나의 영웅
대구에서 자라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 이민. 먼저 형이 줄리아드음악학교로 피아노 유학을 떠났고 2년 뒤 가족도 모두 갔다. 부모는 뉴욕에서 작은 식품점을 20년 이상 운영하면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6시간씩 일했다.
그에게 부모님은 진정한 ‘영웅’이다. 대구에서 운전사와 가정부까지 두고 부유하게 지내던 것과는 딴판으로 살면서도 부모님은 한번도 좌절하지 않고 용감하게 버텼다. 돈은 오로지 자식들의 교육에만 썼다. 형은 예일대, 그와 남동생은 하버드대를 나와 그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보답했다. 한국 국적으로 되돌리는 것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해봤다. 국적은 ‘여권’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 그에게는 단지 공항 입국수속 때 ‘내국인 줄이 짧으냐, 외국인 줄이 짧으냐’의 문제다.
〈윤경은기자〉ke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