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상은 원숭이가 아니라 35억년전에 출현한 박테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이건 한낱 미물이건 모든 생명체의 뿌리는 박테리아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생명체를 차별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통해 다윈의 ‘적자생존’ 진화론에 도전장을 던진 ‘생명이란 무엇인가’. 각 생명체를 경쟁과 정복관계로 본 다윈의 진화론을 뛰어넘어 평등과 공생관계로 바라본 책이다.
저자들은 적자생존 논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종의 생명체를 정복 대상으로 보게 했으며 그것이 결국 지금의 생태계 파괴를 가져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 적자생존 이론은 1953년 유전물질 DNA 발견으로 벽에 부딪쳤다고 저자들은 본다. DNA발견은 세포 공생론, 생명체 공생론의 이론적 뒷받침이 되었다. 즉 모든 세포는 그 다양한 소기관 생명체를 지니고 있고 그것들이 분화 진화되어 나간다. 이것은 개별 생명체들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생명체들과 싸우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또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원초적인 생명체 박테리아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며 지구 전체는 박테리아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이 견해는 다소 상징적이지만 모든 생명체는 평등하고 공생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환경친화적 생명관의 표출이다.
발문을 쓴 장회익 서울대교수(물리학)의 말처럼 생명의 모습은 이제 개체 생명이 아닌 그 모두를 아우르는 총체적 생명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박테리아나 아메바같이 미천해보이는 생명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행간엔 인간 생명 환경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깔려있는 책. 유전자 복제의 시대, 생태계 위기의 시대에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저자 린 마굴리스는 미국의 생물학자로,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의 첫번째 아내이고 도리언 세이건은 그의 딸. 황현숙 옮김. 지호. 13,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참고할만한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에르빈 슈뢰딩거/한울
생명의 기원에 관한 7가지 단서/그레이엄 케언즈 스미스/동아출판사
다윈 이후/스티븐 제이 굴드/범양사
가이아의 시대/제임스 러브록/범양사
우연과 필연/자크 모노/범우사
생명의 다양성/에드워드 윌슨/까치
이기적인 유전자/리처드 도킨스/동아출판사
삶과 온생명/장회익/솔
보이지 않는 권력자/이재열/사이언스북스
생명의 기원/A.I.오파린/한마당
닭이냐 달걀이냐/로버트 샤피로/책세상
에덴 밖의 강/리처드 도킨스/동아출판사
판다의 엄지/스티븐 제이 굴드/세종서적
▼전체론적 관점에서 「더불어 사는 생명현상」조명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하는 가이아 가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린 마굴리스는 생물 현상을 다룰 뿐 아니라 그것들에 얽혀있는 철학적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왔다. 그런 면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슈뢰딩거의 같은 제목의 저서와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슈뢰딩거의 저서가 생물세포의 물리적인 측면들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다분히 기계론적 관점에서 생명현상에 접근했다면 이 책은 전체론적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생물들이 먹고 먹히는 경쟁을 할 뿐 아니라 공생을 통해 다른 생물을 유전적으로 흡수하거나 다른 유기체 속으로 들어가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종(種)이 탄생한다는 진화과정 설명에서 잘 드러난다. 마굴리스는 이것이 적자생존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어나는 자연선택이며 이런 차원까지를 포괄할 때에만 생물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복제송아지 탄생 등 일련의 사건으로 ‘유전자 곧 생명현상’이라는 협애한 인식이 팽배할 위험이 있는 오늘날, 마굴리스의 전체론적 생명관은 생명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김동광(과학세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