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고, 거기서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나는 여자들의 흐벅진 허벅지, 그 시들지 않는 번뇌의 꽃들을 보아야 한다고 이죽거렸던 시인 유하(36). 96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등으로 10만의 독자를 움직여온 그가 3년 침묵 끝에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열림원)를 펴냈다.
수록된 62편의 시들은 ‘정말 유하 것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낯선 모습이다.‘코카콜라’‘최진실’ ‘세운상가’등,그를‘90년대 소비문화에 대한 진정한 풍자시인’으로 우뚝 세워온 대중문화기호의 현란한 구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의 사랑은…’을 관통하는 정서는 청춘의 연애감정이다. 소년시절의 풋사랑부터 시인을 전율하게 했던 그 모든 연애감정의 편린을 소박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그려냈다.
“곧 마흔살이 된다는 것, 더 이상 내가 연애의 한복판에 있지 않고 감정에 굳은 살이 배겨가고 있다는 자각이 이런 시를 쓰게 했다.”
‘간교한 여우도/피를 빠는 흡혈박쥐도/치명적인 독을 가진 뱀도/자기의 애틋함을 전하려 애쓰는/누군가가 있다//그들이 누군가에게 애틋함을 갖는 순간/간교함은 더욱 간교해지고/피는 더욱 진한 피냄새를 풍기며/독은 더욱 독한 독기를 품는다//나도 네 이름을 간절히 부른 적이 있다/돌이켜보면, 결국/내가 내게 깊이 취했던 시간이었다’ (‘나도 네 이름을 간절히 부른 적이 있다’)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끌림’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연애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에 비례해 “시에서 독기가 빠져감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마음만은 청춘일 수 있지 않는가’라고 묻자 그는 어렵사리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 안 쓰면 영원히 청춘에 대한 시는 쓸 수 없을 것 같았다”라는 그의 고백은 ‘나의 사랑은…’을 ‘청춘만가(輓歌)’로 읽게 만든다.
‘잘 가라, 내 청춘의 타이타닉이여/어리석은 나날들은 그 어리석음에 충실했기에/아름다웠도다, …(‘나의 지중해, 나의 타이타닉’중)
‘나여, 이 세계의 건달이여’라고 자신의 이름을 불렀던 유하. 5월1일 그는 바람을 벗삼았던 보헤미안의 세월을 접고 새신랑이된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