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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총재 회견]삭풍정가 봄바람 부나?

입력 | 1999-03-02 19:39:00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총재회담의 수용의사를 밝히고 나섬으로써 새해들어 계속돼온 여야대치정국에 일단 봄바람이 스며드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날 회견의 핵심인 여야총재회담의 수용의사 표명은 총재회담 개최를 위해 성큼 ‘한걸음’ 내디뎠다기보다 ‘반걸음’ 정도 내디딘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을 듯하다.

이날 오후로 예정됐던 여야총무회담을 한나라당측이 사실상 거부하면서 서상목(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방안 등 정국정상화를 위한 조건제시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총재도 ‘성과없이 제각각의 입장만 피력하는 총재회담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총재의 이같은 인식에는 지난해 11월 여야총재회담 직후 동생 회성(會晟)씨가 ‘세풍(稅風)’사건과 관련해 전격구속됐던 ‘충격적’ 체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

이총재가 이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마음속으로 정계개편을 포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이라며 김대통령의 ‘진의(眞意)’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를 풍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재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곧이어 실시될 ‘3·30’재 보궐선거는 여야관계를 다시 치열한 대립공방 속으로 몰아가게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이제 여야총재회담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한 핵심당직자는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분위기에서 총재회담을 안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서상목의원 처리문제를 미결과제로 넘기더라도 임시국회를 공동소집하는 모양만 여당이 갖춰준다면 총재회담의 성사는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이총재의 이날 회견은 ‘데탕트의 메시지’ 그 자체에 오히려 더 큰 무게가 두어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총재가 당초 실무진이 준비해온 문안에서 공격적인 내용을 삭제하고 ‘정책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춰 원고내용을 전면 손질토록 지시한 것은 잇단 장외투쟁으로 고착돼가던 ‘강성(强性)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이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게 이총재의 소신”이라고 설명한다.

이총재는 이날 회견에서 실업 빅딜 대북문제 등 정책현안에 대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이는 이총재가 주창해온 ‘합리적 야당상’을 구현하기 위한 것. 아무튼 이총재의 이날 회견은 그의 향후 행보와 그에 따른 정국의 추이에 관심을 모았다는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