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의 음악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극적인 긴장의 미학, 그리고 속도를 거부하는 느림의 문화를 찾아.
지난달 21일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정명훈 지휘로 연주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장려한 피날레에 압도된 청중은 숨막히는 긴장에서 해방된 기쁨을 함께 느끼는 듯 박수와 “브라보”를 연발했다. 기자는 시계를 보았다. 1백5분. “보통 80분동안 연주되는 곡을….”전율이 일었다. 그 긴 연주가 청중에게 부담없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정명훈이 선택한 템포는 탄탄한 골격을 갖추었으며 잠깐의 허술함도 없었다. 첫악장과 끝악장의 종교적인 드라마에서 정명훈은 강약과 완급의 대비를 치밀하게 설계, 청중의 가슴속으로 힘있게 압도해 들어갔다.
4악장의 ‘원광(原光)’찬가는 평온한 가운데서도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숙연한 ‘느림의 아름다움’을 펼쳐나갔다. 5악장의 피날레가 끝나면서 함성이 박수보다 먼저 터져나왔고, 악단원들도 악기를 두드리면서 명연에 만족을 표시했다.
일반적으로 관현악이 느린 템포일 경우 심오하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 세부적인 묘사를 더 충실히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느린 템포는 특히 오스트리아 독일계통의 음악작품에서 환영받아왔다. 그러나 이는 작품의 긴장도를 낮추기 쉽기 때문에 세계 유수의 관현악단을 오랜 기간 지휘하며 충분한 경력을 갖춰온 지휘자가 아닐 경우 느린 템포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작곡자가 지시한 것과 명백히 다른 템포를 취할 때는 비평가들로부터 ‘돌팔매’를 맞기 십상.
그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 지난해 출반된 포레 ‘레퀴엠’음반(도이체 그라모폰)에서 그는 가사가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극단적인 피아니시모(최약주·最弱奏)를 시도했다. 숙연할 정도의 느릿한 템포를 구사하는가 하면 팀파니와 금관이 으르렁거리는 ‘리베라 메(구하소서)’로 극적인 효과를 연출해냈다. 기존의 포레 레퀴엠 연주와 사뭇 대비되는 새로운 연주상이었다.
정명훈은 “악보에 표시된 템포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내 마음속의 메트로놈(속도계)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최근 내면적으로 많은 변화를 느꼈지만 그것이 어떤 방향인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느린 템포가 음악성을 결정하는 시금석은 아니다’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음악평론가 홍승찬씨(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정명훈이 느린 템포 등 개성적인 작품해석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느림’은 극적인 것, 달콤한 것, 기존의 해석과 차이나는 것을 찾는 청중과의 ‘영합’이 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런던〓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