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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한진수/백기완선생과 이문열

입력 | 1999-03-03 19:21:00


우리 민족의 대륙성에 관해 글을 쓰기 위해 ‘출판운동’을 벌이고 있는 백기완선생도 이산가족 중 한사람이다.

황해도 은율이 고향인 백선생은 해방되던 해 어머니와 열일곱살이던 누나 인숙씨를 남겨둔 채 아버지와 38선을 넘었다. 그런 사연이 맺힌 탓일까. 백선생은 통일운동과 백범 김구선생 배우기, 그리고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인사’를 뜻하는 ‘재야(在野)’라는 용어도 백선생과 함석헌 장준하선생이 처음 만든 말이다. 뿐만 아니라 백선생은 재야의 상징 중 한사람이다.그런 투사, 백선생도 아직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살아있으면 1백1세가 됐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목이 멘다. 89년 문익환목사가 방북, 백발이 된 백선생의 누나를 만났을 때 그녀가 울면서 “우리 어머니는 벌써 돌아가셨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백선생은 불효지곡(不孝之曲)이라는 글을 썼다. 그같은 사연을 알게 된 각계 인사들은 문민정부출범 후 ‘백기완선생 어머니 만나기 1천명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당시 북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북에 있는 부친으로부터의 편지를 전해받은 작가 이문열은 고민끝에 1월 중순 ‘김정일지도자동지’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과 그의 ‘사부곡(思父曲)’은 거의 모든 신문에 소개됐다.

이문열은 서두에서 “이 글을 올리는 것은 남한체제가 생산한 의식을 글로 형상화(形象化)하는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지도자동지의 보호아래 있는 한 인민’의 아들로서…”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이어 그는 “50년이나 남한체제에 적응하면서 기른 제 의식은 불행히도 사회주의 이상과 일치하지 못했고…”라는 표현으로 그의 ‘성향’을 완곡히 표시한 뒤 “살아생전 저희를 한번 보고 싶어하시는 아버님의 애절한 심경과 염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외람된 줄 알면서도 지도자동지께 직접 글을 올려 배려와 선처”를 요청했다.

그러나 아직 북의 ‘지도자동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런 북이 김대중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17명의 미전향 장기수를 석방하자 그들의 ‘무조건 북송’을 요구하는 서신을 남측에 보냈다. “이 문제를 옳게 해결하는 길은 오직 본인과 그 가족들, 내외 여론의 요구대로 그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 보내는데 있다”는 것이 북의 논리다.

그렇다. 말은 맞는 말이다. ‘아무런 조건없이’ 그들을 북으로 보냈으면 한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없이’라는 전제는 북한도 받아들여야 하는 전제다. 자식이 부모를 만나는 문제는 그야말로 ‘아무런 조건없이’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논리, 이 절박한 과제’가 잘 풀려 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단순한 논리, 이 절박한 과제’란 남측의 희망사항일 뿐 북측이 말하는 ‘아무런 조건없이’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북측의 의중이라는 분석들이다. 정말 이번만은 북측도 정확하고도 현실적인 판단을 해 주었으면 한다. 이 일이 잘 되면 김대통령과 김국방위원장은 노벨 평화상을 타고도 남을 것이다.

인도적 문제의 해결은 정치의 출발이자 기본이다. 북이든 남이든 백성의 가슴속에 한(恨)을 남기는 정치는 죄악이다.

한진수 han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