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클린21/독자제보]「발전소 지원금」낭비 르포

입력 | 1999-03-03 19:42:00


지난달 19일 오후 충남 당진군 석문면 삼봉사우나는 보일러실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사우나는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총 6억8천여만원의 지원금을 들여 지었다. 준공된 지도 만 1년이 지났지만 원천적 부실공사 때문에 아직까지도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사우나를 임대받아 영업중인 이병우(李炳雨)사장은 땀범벅이 된 얼굴로 보일러실을 나오며 “보수공사에 질렸다”고 말했다. 이사장은 “공사 때문에 사우나문을 닫는 날이 많아 매달 적자”라며 “임대기간(1년)만 채우고 미련없이 그만 둘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사우나의 기본설비인 폐수열회수기조차 갖추지 않았다. 보일러의 화력은 약한데 탕은 너무 커 물이 제대로 데워지지도 않았다. 물 온도를 높이기 위해 탕을 절반으로 나누는 보수공사를 했다. 단열이 잘 되지 않아 “탕 안이 너무 춥다”는 손님들의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이 사우나 공사 담당 군청공무원은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금 건설공사가 이처럼 부실한 것은 지원금이 주인없는 돈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클린 21’팀이 만난 발전소 주변 주민들이나 공무원들 중 상당수는 이 지원금을 스스럼없이 ‘공돈’이라고 불렀다.

‘먼저 갖다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인식이 결국 지원금 사업을 낭비와 부실로 얼룩지게 만들고 있는 것.

당진 화력발전소가 건설된 이후 94년부터 연평균 14억여원의 한전 지원금을 받고 있는 당진군 석문면. 해마다 번듯한 마을회관이 각 부락별로 경쟁적으로 세워지고 있다. 한 부락은 지은 지 5년도 채 안된 마을회관이 있는데도 최근 지원금 1억5천여만원을 들여 2층짜리 회관을 또 지었다. 올해도 1백가구 안팎의 주민이 사는 두 개 부락에 1억9천만원과 1억5백만원짜리 복지회관이 각각 세워질 예정.

한 전직 이장(48)은 “1년에 몇 차례 밖에 쓰지 않는 마을회관을 리(里)별로 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9일 취재팀이 지원금으로 지어진 모부락의 새 마을회관을 찾았으나 출입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경북 울진군 북면 면사무소 맞은 편에 있는 옛 농협 2층 건물은 주민 편의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97년 지원금 4억8천여만원을 주고 사들인 것이지만 2년 넘게 방치돼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이 건물 출입문에는 ‘공공근로자 임시휴게소’라는 종이푯말이 붙어 있었고 1층에는 탁구대 한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는 뽀얀 흙먼지가 일었다. 한 주민은 “내 돈 주고 산 건물이라면 그처럼 오랫동안 ‘나 몰라라’ 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95년 당진 화력발전소 부지에 살던 주민 25명의 생계유지를 위해 세워진 교로3리의 이오장여관 3층건물도 대표적 부실공사. 공사비가 4억원이나 들었지만 요즘도 장마때만 되면 벽과 복도에서 물이 샌다. 여관 관리인은 “지난해에만 보수비가 7백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원금 1억6백만원이 들어간 당진군 소난지도 간이상수도 공사도 물에서 이물질이 섞여 나오는데다 1월에는 유량계와 급수배관이 얼어 터져 3일간이나 물공급이 중단돼 주민들의 원성만 사고 있는 사업.

투자전망을 엄밀히 따지지도 않고 다투듯 지원금을 타내 사업만 크게 벌여놓았다가 아까운 돈만 날린 경우도 많다.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전남 영광군 홍농읍 주민들은 92년경 소득사업 명목으로 3억원가량의 지원금을 받아 흑염소 개 한우를 사들여 사육했다. 그러나 정확한 수요전망이나 구체적인 사업프로그램도 없이 출발한 사육사업은 곧 난관에 부닥쳤고 3억원은 허공에 떠버렸다.

3억원이 투자된 당진군 성문면 초락1도리 장갑공장은 95년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주민과 공무원 모두가 사업전망을 낙관했다. 그러나 제대로 돈벌이도 못해본 채 1년여만에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수요와 가격 경쟁력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 지난달 18일 취재진이 방문해보니 공장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철제의자와 탁자, 장갑짜는 기계 등이 녹과 먼지가 잔뜩 낀 채 공장 안에 나뒹굴고 있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조립식 공장 건물은 6천만원이나 주고 지은 것이다.

길가쪽 공장 벽에는 ‘한전 지원금으로 건립된 시설’이라고 반듯하게 적혀 있었지만 그 주위에는 못 쓰는 드럼통 고무통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이었다.

이 마을 출신인 백성옥(白成玉)당진군의원은 “공장을 임대받았던 업자가 도망가는 바람에 주민들은 임대료도 못 받고 전기요금까지 대신 물어줘야 했다”고 말했다.

지원금 사업의 이같은 부실과 낭비, 실패와 편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작년에 돈을 어떻게 썼든 어차피 내년에도 수십억원의 지원금은 또 나오기 때문이다.

〈당진·영광·울진〓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