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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뉴욕 스토니브룩大 前총장-송병락씨 대담]

입력 | 1999-03-04 19:37:00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캠퍼스의 존 마버거 3세(John Marburger Ⅲ) 전총장이 최근 서울대 대학원 초청으로 방한했다. 마버거 전총장은 80년에서 95년까지 16년간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취임당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이 대학 이공계를 전미 3위권에 드는 우수한 대학으로 끌어올리는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준 ‘대학경영의 달인’. 그는 현재 미국 브루크헤이븐가속기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그의 이번 방한은 서울대를 연구중심대학, 대학원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 등에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서울대측이 초청한데 따른 것이다. 존 마버거 3세는 바쁜 일정중에 틈을 내어 3일 서울대 송병락(宋丙洛)부총장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한국대학이 21세기에 대비해 취해야 할 발전방향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최근 한국의 대학들, 특히 서울대는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서울대가 ‘벤치마킹’할 상대로는 어떤 형태의 대학이 적당할까요.

“저는 대학이 해야할 역할의 핵심은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적인 에너지를 창출해내는 활동입니다. 서울대는 기초가 잘 돼 있고 잠재력도 있는 대학입니다. 최근 서울대의 발전계획을 검토했는데 대학원과정을 재조직하고 연구효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은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연구중심대학은 어떤 대학을 말하는 것입니까. 한국에서는 연구중심대학의 개념이 때로 대학원중심대학과 혼용되고 있습니다.

“연구중심대학이란연구와 교육의 양면을고르게갖춘 성숙한 대학을 뜻합니다. 대학의연구는 교육을 위한 자원입니다. 우수한각 분야의 연구자가있는대학에는우수한 학생이 몰리는법입니다. 단지 연구만이라면 기업체도 할 수 있습니다. 연구중심대학에서는연구가교육과 긴밀하게 맞물려 진행됩니다. 학부 대학원 박사과정 모두에서연구가이뤄지고 연구가 교육에 연결될 때 비로소 온전한 연구중심대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대학원에서만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수한 인력 확보가 우선▼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연구인력의 ‘질’이 우선입니다. 최신 연구장비와 시설, 잘 갖춰진 도서관 등 매력적인 연구환경을 만들고 우수한 학자들을 끌어들일 때 연구인력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은 재작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하에 있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구조조정과 개혁이 진행되고 있으며 대학 역시 변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 또한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대학의 개혁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 많이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하며 다른 나라에서 이뤄진 기업 및 사회의 개혁방법을 소개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은 사회개혁을 위한 ‘모델’로서도 가치가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물론 사회개혁에 봉사할 우수한 학생을 배출하는 것입니다.”

―한국을 8차례나 방문하셨고 한국사회와 대학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를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개혁을 위해 조언해주시고 싶으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한국적상황에서는 우선 두가지가 선행돼야할 것 같습니다. 학생의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유연한 입학절차와 기준의마련이 첫번째입니다. 두번째로는 교수인력의 연구능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교수간경쟁을 부추겨야 합니다. 입학제도개선과 교원의 연구능력 제고라는 두가지 문제는 결국 ‘학문의 질’을 끌어 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의 경쟁력은 상위 30대 대학이 선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현실에서 볼 때 소수의 대학을 집중 지원하는 ‘불균형발전전략’은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원은 항상 제한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집중지원전략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미국의 경우 뉴욕주나 캘리포니아주에는 주립대학이 여러 개가 있지만 주 정부는 그중에서도 1,2개 대학만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총장 재임기간 중 대학개혁을 추진하시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자금부족이 제일 큰 문제였지요. 하지만 주정부의 규제도 큰 장애요인이었습니다. 주립대학인 만큼 주정부의 예산 인사 시설 분야의 융통성 없는 규정이 제약이 됐습니다. 세목별로 경직된 예산을 총장 재량에 의해 활용할 수 있도록 주의회의 협조를 얻어 입법화작업을 마친 뒤에야 대학개혁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총장 강력한 리더십 필요▼

―대학개혁의 주도권은 누가 가져야 할까요.

“총장을 오래해서 저에게는 약간의 ‘편견’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역시 총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총장은 학문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어야 하겠습니다. 정부의 교육당국자가 기획 또는 감독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리더십은 총장에게 집중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기간 이상 총장의 임기가 보장되는 편이 유리합니다. 한국 대학에서는 교수들의 직선에 의해 총장이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만 단과대 학장을 직선으로 선출하는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총장은 단과대 학장에게 개혁이나 연구업적의 성패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직선제 하에서는 학장들이 평교수의 눈치만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대학들은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수인력을 줄여야 한다는 내외부의 압력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간단히 말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교수의 실력과 연구업적의 효율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 평가돼야 합니다. 충분한 연구성과를 내지 못하는 교수들은 분명 재평가돼야 합니다. 그러나 연구중심대학이 교육에만 치중하는 대학보다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입니다.”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교수들의 업적평가는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스토니브룩캠퍼스의 경우 처음 교수를 계약으로 채용해 6년간 재직한 뒤 평생교수직을 줄지 결정합니다. 처음 임용할 때부터 탁월한 연구성과가 기대되는 교수를 선발하지만 이 중에서도 극소수의 인원만이 정년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 후에도 5년마다 이사회가 연구성과를 평가합니다. 교수들은 매년 자신의 연구성과를 대학측에 보고하며 이 평가가 봉급인상에 반영됩니다. 외부 평가기관에 교수나 각 학과에 대한 평가를 맡겨 예산배정에도 반영합니다.”

―한국대학의 학사조직이 너무 복잡하고 세분화돼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대학개혁을 위해서 어떤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학과의 통폐합 등 학과의 변경은 한순간의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변화가 바람직합니다. 사회변화가 자연스럽게 대학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새로운 학과가 생겨나고 시대에 맞지 않는 학과는 도태되어야 합니다. 미국 컬럼비아대는 10여년전 도서관학과를 폐쇄했고 예일대는 80년대에 과학사학과를 없앴습니다. 저는 총장이 된 뒤 교육학과를 폐쇄했지요. 학과의 존폐나 통폐합문제는 대학의 최상층부에서 사회적 변화를 감지해 결정해야 합니다.”

〈정리〓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