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金正吉)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4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내각제 논의시기 묵계설을 제기하자 자민련은 5일 이를 부인했다. 이완구(李完九)대변인은 “그런 사실이 없다”면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반박했다.
1월 중순 청와대의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과 박지원(朴智元)공보수석비서관이 유사한 얘기를 했을 때도 자민련은 같은 반응이었다. 대통령과 총리간에는 내각제의 ‘내’자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청와대와 자민련의 내각제 공방은 늘 이런 식이다. 한쪽에서는 줄기차게 ‘DJP 밀약설’을 흘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는 양상이다. 누구 말이 옳은지 알 길이 없다.
3,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쏟아져나온 내각제 발언은 더욱 헷갈렸다. 여야 의원들이 저마다 밝힌 내각제 주장은 대부분 소속 정당의 강령이나 당론과 다른 ‘당 따로, 나 따로’ 식이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의 김경재(金景梓)의원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회의 강령을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바꿨는데도 “내각제 개헌이 자민련만의 열망으로 가능하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박헌기(朴憲基) 홍준표(洪準杓)의원 등은 당 강령이 대통령제인데도 내각제 지지의사를 내비쳤다. 같은 당의 이사철(李思哲)의원은 “내각제를 해야 검찰 중립이 보장된다”고까지 말했다.
이러다 보니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공동여당’인지, 아니면 자민련과 한나라당이 ‘공동야당’인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청와대와 여야 3당은 물론 의원들 개개인마저 자신의 이해에 따라 내각제 논란을 벌이다 보니 국정만 혼란스러워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민생이 떠안게 되는 한심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 정치는 늘 그렇듯 후진성을 못벗고 있다.
송인수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