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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선]오태동/사회활동 활발한 중국여성

입력 | 1999-03-07 20:45:00


‘쑨’이라는 중국 여성은 오십대 후반의 나이에 후덕한 풍채를 가진 전형적인 중국의 ‘라오반(老板·우두머리)’이다. 그는 집단공사(集團公司·그룹회사) 회장으로 벤츠를 타고 다닌다. 다롄(大連)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요 여걸이다. 나는 그를 쑨동사장(董事長·회장)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도 여성의 호칭은 결혼전에는 ‘샤오지에(小姐·아가씨)’라고 부르다가 시집을 가면 남편 성을 앞에 두고 그 뒤에 ‘푸련(夫人)’이나 ‘타이타이(太太)’를 붙여 부르는 게 관례다.

쑨동사장과 같이 상당한 직위가 있는 사람은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직위를 붙여 부른다. 중국에서 ‘누구누구 엄마’식의 호칭을 거의 들어본 바 없다. 부부간에 서로 이름 부르는 것을 결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여성의 지위가 당당하다.

언젠가 쑨동사장에게 “한 번도 뵙지못한 남편께서는 무슨 사업을 하시느냐”고 어렵게 물었더니 자연스럽게 “집안 일”이라고 대답했다.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쑨동사장은 남편은 가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을 보탠다. 한 번은 부담없는 자리에서 여성 부시장에게 남편의 일을 화제로 꺼냈더니 남편은 다른 시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선 밖의 일과 안의 일로 남녀를 구별하는 것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3월8일은 국제노동부녀절(세계여성의 날)이다. 원래 부녀절은 1910년 미국 시카고 방직공장 여직원들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며 시위를 한 것으로부터 유래됐다. 원산지에서는 아직 기념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는 부녀절이라고 부르며 많은 기념행사가 열린다.

직장여성들은 반나절만 근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회사에 따라서는 옷이나 식품 등 선물을 주고 남편과 함께 보라고 영화관람권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정부나 기업체에서는 모범 여성기업가나 근로자를 표창한다.

중국의 직장여성은 출산을 전후하여 길게는 반년이나 쉴 수 있기 때문에 최근 기업에서 여성근로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맹렬여성들은 이에 반발해 여성들끼리 여성만의 기업을 만들어 남성들에게 뭔가를 보여주자며 기염을 토한다.

이런 마당에서 새삼스레 취업이나 보수 승진의 차별화나 성희롱을 운운했다간 촌놈 아니면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받게 된다.

쑨동사장은 말한다. 중국에서 여성은 하늘의 절반이다. 인민이 하늘인데 그 절반이 여자인 까닭이다. ‘하늘은 남자요 땅은 여자’라는 내 전통적 분업논리에 그는 “하늘도 공유며 땅도 공유”라는 혁명적 평등논리로 반박한다. 책임과 권한을 기능과 효율에 따라 분담하는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하늘도 나누고 땅도 나누자는 사고는 점점 대세가 돼가고 있다.

다롄의 전차운전사는 모두 여자다. 기차 차장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다. 지게차나 대형 트레일러의 여성 기사들이 사고를 덜 낸다는 통계도 있다. 언젠가는 중국에서도 대처와 같은 여성이 나타나 대중국을 운전할지도 모른다.

오태동(중국 다롄 한스컨설팅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