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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김진애/「줏대있는 집주인」을 찾아서

입력 | 1999-03-12 19:05:00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영화 건축 등 분야에서 일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집필하는 ‘문화 칼럼’을 신설했습니다. 문화 칼럼은 매주 토요일 게재됩니다.》

좋은 집을 짓는 조건이라면? 좋은 건축가, 좋은 시공자? 물론이다. 그러나 으뜸 조건은 역시 좋은 집주인이다.

우리 사회에는 좋은 집주인은 커녕 진짜 집주인조차 많지 않다. 살 집, 쓸 집을 짓는 게 아니라 팔 집, 세놓을 집, 잠깐 살다 떠날 집이 대부분이니 ‘진짜 주인’ 없는 집이 많다.

내게 맞는 집이 뭘까. 튼튼할까. 오래 버틸까. 너무 큰 건 아닐까. 관리하기 편할까. 멋있을까. 이런 고민에 빠진 채 지어지기 십상이다. 민간 건축물은 그나마 시장기능이 작용한다. 부실 건물도 많지만 ‘건축 소비자’가 ‘가상 집주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공공 건축물이다. 기관 단체 대학과 같은 집단이 짓는 집이다. ‘발주처’는 있으나 ‘집주인’은 없는 집들이다.

이런 집들은 어떻게 지어지나. 대개 ‘설계 경기’를 통해 건축가를 찾는다. 기껏 두세 달 주고 안을 뽑는다. 때로는 ‘설계시공 일괄입찰’이라는 통칭 턴키 방식으로 뒷심 있는 시공자 위주로 뽑기도 한다. 봉투에 돈 적어내는 입맛 쓴 또뽑기 입찰도 한다.

발주처는 고민이 없다. 대충 만든 프로그램으로 설계경기를 하고 심사는 소위 공신력 있는 위원들에게 맡기고 때로 주민들을 동원해 인기투표를 벌이고 외부 심의와 자문에 의존한다. 오직 신경 쓰는 것은 공정성 시비에 말려들지 않을 것, 감사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질보다 양적인 실적을 따지고 점수제를 선호한다. 이 과정에서 집주인은 실종되고 오직 돈과 과정만 따지는 발주처, 그것도 언제 담당이 바뀔 지 모를 발주처만 있을 뿐이다.

이런 줏대 없는 집주인이니 공공 건축물 치고 괜찮은 건물이 귀하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매양 그게 그것 같은, 누구 입에도 씹히지 않을 무난한, 덩치는 크고 요란해도 쓰기에 맛없고 보기에 멋없는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선진사회를 보자. 공정성, 감사에는 더 철저한 그네들이다. 그러나 질 추구는 각별하다. 그들도 설계경기, 턴키 입찰을 한다. 다만 신중하다. 설계경기는 뽑은 안을 실현할 자신이 있을 때 한다. 공개적으로 뽑힌 안은 종종 예산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뽑고 나서 뜯어고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뽑힌 안은 절대 고치지 않는다. 설계보다 기술력, 자본력이 긴요할 때 턴키 입찰을 한다.

그들은 다단계 선정방식을 많이 쓴다. 건축가 리스트를 정해 작업을 분석하고 설계접근에 대한 짧은 제안을 받고 심층 인터뷰를 한다.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기회를 준다. 그리고도 못 정하면 3∼5명 정도로 좁혀서 적절한 시간과 비용을 주고 설계안을 만들게해 심사를통해선정한다.

서로 호흡을 맞추며 같이 문제를 풀어갈 파트너를 찾는 과정이다. 궁합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집주인도 원하는 집을 구체화하고 예산, 쓸 사람, 그 동네에 맞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좋은 집주인이 좋은 집을 만든다’는 기본이 통하는 사회에서 건축문화가 꽃핀다. 우리도 줏대있는 좋은 집주인이 필요하다.

김진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