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인생.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라토너는 언제나 아름답다.
제70회 동아마라톤에 출전하는 이의수(27·중앙대). 그가 다시 일어섰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불기 시작한 97년11월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그해 초 부산외국어대를 졸업할 때만 해도 그는 장래가 촉망되던 기대주였다. 96년3월 동아국제마라톤에선 생애 최고인 2시간13분44초로 11위. 이어 10월에는 춘천국제마라톤에서 백승도(한국전력)에 이어 국내선수중 2위(2시간14분44초)에 올라 스타탄생을 예고했다.
그러나 청운의 꿈을 안고 입단한 실업 세모팀은 창단 1년도 안돼 문을 닫았다. 그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추위와 배고픔보다는 배신감에 잠을 못 이룬 나날들. 결국 운동을 그만뒀다.
그때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를 만났다. 96동아국제마라톤을 끝으로 은퇴한 황영조는 그를 친동생처럼 보살펴줬다.
황영조와 함께 한강변을 달리던 작년 가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샘물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또 하나. 동료선수인 방선희(27·태안군청)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97동아국제마라톤에서 우승(2시간43분40초)했던 방선희는 당시 그와 비슷한 처지였다.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둘은 쉽게 친해졌고 방선희는 결혼을 담보로 그로부터 재기 약속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마땅히 소속팀을 찾기 힘들었던 그는 중앙대에 편입했다. 중앙대는 마라톤은커녕 육상팀조차 없는 곳.
하지만 체육교육과 천영일교수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고향인 충남육상연맹에서도 매달 1백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모든게 순조로웠다. 제대로 훈련도 못한 채 출전한 지난해 전국체전에선 4위의 성적을 거두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목표요, 당연히 우승입니다.”
이의수는 마라톤 현역감독조차 이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는 주위의 얘기에 펄쩍 뛰며 우승을 다짐했다.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