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작곡가 토마소 비탈리(1660∼1711)의 바이올린 독주곡 ‘샤콘’을 가리켜 한 음반회사가 붙인 선전문구. 이 단순명료한 표현은 ‘샤콘’의 대중적 인기를 반영하는 상징어가 됐다. 그러나 ‘샤콘’은 슬프기 앞서 ‘무서운’ 음악이다.
짧은 전주에 이어 독주자는 곧바로 분명한 표정의 주제에 돌입해야만 한다. 단음계의 주음(主音)인 ‘라’로 시작해 끊임없이 직설적인 슬픔을 토로하며 거듭 ‘라’로 되돌아간다. 단 하나의 우회적 표현도 없이 주제를 쏟아놓아야 하는 것. 변주곡 형식으로 전개되는 10분 동안 연주자는 이 주제를 형형색색의 이미지와 감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많은 연주자가 실패해 혹평을 감내하거나 도전 자체를 포기하기도 했다.
장영주가 이 ‘샤콘’을 모국의 3월 봄연주회에서 펼쳐 보인다. 최근 내놓은 새 음반에서도 장영주는 ‘샤콘’을 간판곡으로 들고 나왔었다. 음반제목은 ‘달콤한 슬픔(sweet sorrow)’. 장영주는 왜 이곡을 달콤하다고 했을까. 음반 연주를 통해 장영주의 모국 봄연주회를 미리 감상해 본다.
‘샤콘’의 역사적 명연(名演)을 이뤄냈다고 일컬어지는 프란체스카티 하이페츠 등은 절벽 앞에 선 듯한 절망의 표현으로 주제의 강력함과 대결했다. 활 전체를 사용하는 짱짱한 보윙(활긋기)과 빠르게 당긴 템포로 만들어내는 분명한 윤곽은 이 작품에 서릿발같이 차디찬 고독이라는 이미지를 씌웠다. ‘달콤함’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
그럼에도 장영주가 ‘달콤한 슬픔’을 내세운 뜻은 주제제시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템포를 한 발짝 늦추고 나아가 활의 속도마저 느리게 해 흐릿한 하늘처럼 음울한 표정의 주제를 지어낸다. 장식음이 많이 주어진 변주 부분에서는 꼼꼼히 장식 자체의 아름다움을 풀어내고, 주제가 명료하게 두드러진 부분에서는 한결 강하게 내려긋는 음색과 유장한 호흡으로 선율의 아름다움을 엮어낸다.
장영주는 서울 연주회에서 비탈리의 ‘샤콘’ 외에도 리햐르트 시트라우스의 소나타 장조,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 바이젠’ 등을 찰스 아브라모빅의 피아노 반주로 선사한다.
‘샤콘’을 달콤하게 풀기는 쉽지 않다. 주제 자체가 가진 집중력과 긴장은 본래대로 빠른 템포와 강력한 활긋기를 사용할 때 훨씬 탄탄하게 구축된다. 자칫 멋을 부리다가는 전체를 버티고 있는 골격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장영주는 데뷔시절부터 청중과 비평가를 경악하게 했던 특유의 대담함과 태연자약함으로 위태위태한 ‘달콤함’을 훌륭하게 버티어낸다. 02―598―8277(크레디아)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